고전콘서트, 라는 책을 읽으면서 아, 이런 것이었구나, 라며 손뼉을 치면서 읽은 부분이 얼마나 많았었는지 모르겠다. 플라톤의 <국가>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공자의<논어>, 장자의 <장자>는 너무 익히 들어온터라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동안 관련된 책 들을 몇 번 읽기도 했으니 그렇기에 기초적인 지식들은 알고 있다, 라며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이전에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란 책을 읽으면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다시 배우고 <나는 루소를 읽는다>를 보면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이런 것이었구나, 를 인지했듯이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알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인류 지식의 보고라고 하는 고전에 대해서 읽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종종 하기는 하나 실제로 고전을 손에 쥐고서 처음부터 끝까지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읽으면서 지금 이 책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을 안고서 계속해서 검색을 하면서 공부를 하듯 한 줄 한 줄을 넘겨야 하기에 고전을 마주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 이 <고전콘서트>는 그러한 고전을 왜 우리가 마주해야 하며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해 쉬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를 의미하는 '유토피아'에 대해서, 세상의 고단함이 느껴질 때면 이곳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는 여행을 꿈꾸듯, 찌는 듯한 현재를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게는 파라다이스와 같은 곳으로 있다고만 하면 가고 시은 곳이 아마 유토피아가 아닐까 싶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 곳에 대해 그린 것으로서, 막연하게 나는 이 곳에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행복만이 존재하는 곳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마주한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그곳을 이상향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위험할 수 있으며, 모어의 언어유희에 대해서 곱씹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이 책을 읽어내려가야 할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인구 얘기도 나오는데, 도시 인구가 6천 가구로 제한되어 있어서 그 이상을 넘기면 다른 도시로 가야 합니다. 가족 수도 10~16명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아이가 늘어 한 가구가 16명을 넘어서면 초과되는 사람을 다른 가정으로 보내 버립니다. 가족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데, 유토피아의 가족 개념은 우리가 알고 잇는 일반적인 가족의 개념과 다릅니다. 집을 추첨해서 배정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가족보다 가족을 넘어선 공동체가 훨씬 더 중요한 거예요. -본문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도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하고 여행 중에도 6시간씩의 노동이 필요한 유토피아의 세상을 보노라면 과연 이곳이 유토피아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사형 집행을 최대한 미루고 있으나 그 사형 집행을 미루기 위해서 더 많은 사형이 자행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어디서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을 보노라면, 유토피아라는 것 역시도 여전히 유토피아를 찾아가고 있는 과도기적인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특히나 유토피아의 세상을 '공산주의'가 아니냐, 라는 질문을 보면서 막연히 모든 것을 나누고 함께하는 그 사회는 공산주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던 나에게도 유토피아와 공산주의의 차이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마주하게 된 책인데 이 곳에서 그동안 당연히 알고 있다 생각했던 '실존주의'에 대해서, 그 실존주의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게 된다. 사실 사르트르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는 프랑스가 독일에게 점령당했던 그 아픈 역사를 안고 있으면서도 알제리를 식민지로 만들어 그들의 아픔을 다시 알제리에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자국이 취한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나섰다고 한다. 프랑스는 이슬람 국가인 알제리를 식민지로 만들어서 논밭을 전부 포도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생산한 포도주를 프랑스에 팔도록 했죠. 알제리 국민들은 먹지 않는 포도와 포도주를 만드러 프랑스에 팔아 먹고살게 함으로써 영원한 경제적 종속 국가로 만든 거죠. 샤르트르는 알제리 독립을 지지했고, 이것 때문에 끊임없이 드골 정권과 부딪칩니다.-본문 살아있는 실존주의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말하는 실존주의는, 개념이 생기고 나서 눈에 보이는 존재가 나타나는 것이 으레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인간이 생겨나고 나서 그 이후에 개념들이 생겨나는 것이기에 본질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신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언떤 본질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다른 것들과 달리 그냥 이 세상에 던져졌다는 겁니다. 휙 던져져 툭 튀어 나온 존재락도 하는데요. '실존주의'라는 단어를 보면 '출구(exit)'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죠. 또한 실존주의의 '실'을 알맹이의 개념으로 해석하면 이해가 될 텐데, 본래는 없다는 뜻이에요.그러니까 본질이 없다는 뜻이죠. -본문 그렇기에 인간에게 본질을 요구하는,예를 들어 '학생다워져라'라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규정하는 학생다움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인간에게 인간의 본질이라는 잣대를 드리우면서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는 선고되었다'라는 말처럼,자유는 인간이 벗어던져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수 많은 인간의 본질에 의해 발목이 묶여 있는 상태이다. 그것이 우리의 생물학적인 조건이기도 하고 계급적인 한계이기도 하기에 자유라는 이름 하에 드리운 불평등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읽고나서 다시 책을 들척여보다 보면 다시금 새로운 내용들이 눈에 보이곤 한다. 아마도 이 안에 담겨 있는 내용들을 일독하는 것만으로 완벽히 내것으로 만들고자 한 것은 한 숟가락의 밥으로 배가 부르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고전이라는 것을 어떻게 마주해야하는지, 내가 모르고 있던 세상은 무엇이었는지에 일컫어 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는 듯 하다. 특히나 각 파트가 끝나는 무렵에는 어떠한 책을 읽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조언을 기반으로 이미 몇 권의 책을 주문해놓은 나로서는 이 책을 한동안 옆에 끼고 있을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