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시 삼백수 : 7언절구 편 우리 한시 삼백수
정민 엮음 / 김영사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정민 교수의 새로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오직 독서뿐>에 이어 그 다음 책은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 주실지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가 한껏 고무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두툼한 두께감도 두께감이지만 무엇보다도 한시라는 것에서 과연 이 책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먼저 엄습해오는 듯 했다.

중고등학생 때 이후로 그 어디에서도 한시를 마주해 본 적이 없었다. 한자를 쉬이 읽어 낼 수 있는 세대도 아니거니와 라는 장르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기에 한자로 이뤄진 시는 그야말로 난공불락과 같은 존재이기에 어떻게든 배워야만 했던 학창시절 이후로는 구태여 마주하려 노력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금 두 손 위에 이 묵직한 책이 올려져 있다. 과연 이 책을 어떻게 읽지, 라는 한숨과 함께 한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7언 절구로 이뤄져 있는 한시이기에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많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에 대한 나의 학창시절의 기억과 그 기억이 만들어 낸 어렴풋한 거리감이 한시에 대한 거부감이 일게 만들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뿐더러 생각보다 재미있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시는 절제의 언어다. 할 말을 감출수록 빛난다. 시인이 말하지 않아도 헤아리지 못할 것이 없다. 소풍날 보물찾기가 이처럼 재미있을까? 몇 글자 안 되는 표현 너머 아마득한 성채가 솟아 있다. 그 높은 성채의 아기자기한 이면을 그저 담벼락 너머에서 기웃기웃 들여다본 느낌이랄까? – 본문

재목을 구하러 간 길에 한파 속에서 고생하는 아랫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에 쓴 시라고 한다. 모두 손이 얼어 추위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홀로 비단 이불을 덮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고 고백하고 있는 이 시를 보면서, 이 모든 것들을 글로 풀어 냈더라면 과연 이 담백하면서도 그 절제된 언어 안에서 이토록 깊은 맛을 그려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 밖에 있는 사람들이 손이 모두 얼었음을 <門外幾人皆墮指>라 말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7글자로 이 모든 것을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또 빠져들게 된다. 이 한 글자 글자를 이어 쓰기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까? 에서부터 이미 천 여 년의 작품까지도 담겨 있는 이 책을 읽노라면 그들이 살았던 당시의 모습과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는, 중첩되어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새록새록 하기만 하다.

 

그 옛날 최치원은 이곳에서 귀를 먹게 하는 그 소리로 하여 인간 세상의 시비성이 이르지 않는 것을 기뻐했는데, 오늘날 시냇물은 무에 그리 바쁜지 세상 쪽으로만 달려나간다. 아서라! 막상 떠나기는 손쉬워도, 막상 나가본들 이만한 명산을 만날 수야 있겠느냐. 늘 눈앞의 것에 고마운 줄 모르고 멀리 마음 두는 인간의 욕심을 보는 것 같다. – 본문

굽이쳐 흐르는 물을 보면서 청량감을 느끼거나 자연의 위대한 장관 앞에서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이 쏟아지는 우레와 같은 소리 앞에서 최치원은 세상에서 들리는 잡음이 들리지 않음을 기뻐했다고 한다. 그 기쁨의 순간을 느낄 찰나도 없이 굽이치는 소리들이 너무나 빠르게 흐르는 것을 아쉬워하며 지은 이 한시를 보면서 이러한 한시조차 즐길 여유도 없이 매일을 허겁지겁 달려만 왔던 나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면 다시 마주할 수 없는 순간들이지만 헐떡이면서 지나가기만 바쁘고 그렇게 뒤돌아 보면 어느새 아득하니 먼 과거가 되어버렸던 지난 날의 20대를 떠올리며, 계곡에 흐르는 물처럼 무엇이 그리 급하였기에 빨리 빨리 만을 외치며 지나왔나 하는 서글픈 마음이 일곤 한다.

 

한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하루에 하나의 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한시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게 된다. 어릴 때에는 마늘의 아리고 매운 맛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어느새 찾아먹는 느낌이랄까. 무작정 어렵다, 라고 생각하며 외면하기 이전에 천천히 이 책과 함께 한시를 읽다 보면 천 년의 세월을 함께 나누어 그들의 삶을 함께 주억거리게 된다.

아르's 추천목록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 정민저

독서 기간 : 2014.01.14~01.22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