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 사랑, 삶 그리고 시 ㅣ 날마다 인문학 2
김경민 지음 / 포르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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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끝은 삶의 시작과 맞닿아 있다는 맥락의 문장을 하루키의 글에서 본 것 같다. ‘상실의 시대’였을 것이다. 이 책에서 비슷한 구조를 본다. 바로 사랑과 이별의 연결성이다. 모든 사랑은 아름답고 달콤하지만 세상 만사에 흥망성쇠가 있는 것처럼 사랑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시들로 가득하다. 그 사랑은 이별로 이어진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마음가짐에서 지난 사랑은 찬란한 추억이 되거나 쓰라린 흉터로 이후의 인생을 따라다닌다. 줄곧 존재감을 드러내는가 하면 무의식 아래로 가라앉는 망각의 형태로 있다가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불현듯 특정 순간에 스위치를 누른 후 나오는 다음 동작처럼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사랑은 밋밋한 이름도 아름답고 의미 있는 색으로 물들여주는 마법을 부린다. 이름도 한 예일 뿐 내면을 채우는 모든 감정과 외부를 둘러싼 모든 환경의 가치가 상대성을 띄게 된다. 사랑은 비단 남녀 간의 영역에서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관계의 형태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빛나고 사라진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대지가 포근하고 낭만적으로 느껴지는가 하면 앞을 볼 수 없게 되어 짙은 어둠이나 다름없는 절망의 끝없는 평지로 느끼게도 된다.

 

1부에서 사랑에서 이별로, 또 이별에서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이별의 시작과 과정, 그 완성’을 돌아보았다면 2부에서는 계속되는 삶에 대한 노래가 이어진다. 금방 눈에 띄는 내용으로는, 허은실의 ‘이마’라는 작품에 대해 말하면서, 이마의 크기와 손의 크기가 비슷한 것을 통해 이미 인간은 서로에게 환대, 즉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고 내 안에서 그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준비가 태어나면서서부터 되어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는 해석이었다.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희망이다. 그 희망이 가능하게 하는 주요 개념으로 ‘환대’를 제시한다. 요즘 ‘환대’라는 개념은 기독교계에서도 많이 주목하고 다루고 있는데, 아마 요즘 차별 문제가 다른 때보다 더욱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시인들 중에는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백석, 김소월, 운동주, 한용운 같은 익숙한 이름도 있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기형도 시인의 시도 있다. 동시대를 함께 호흡했거나 호흡하고 있는 황동규, 이병률, 마종기, 나희덕, 이성복, 정호승처럼 잘 알려진 시인들도 있는 반면 낯선 시인과 시들도 있어 이들 모두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다. 읽는 재미를 더하는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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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프라이버시 - 개인 생활과 사회를 위협하는 기술에 관한 탐사기
니혼게이자이신문 데이터경제취재반 지음, 전선영 옮김, 손승현 감수 / 머스트리드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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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클릭 화살표들로 뒤덮인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의 표지 이미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미 이 시대의 개인이란 어떻게 규정되고 통제되고 활용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 거기로부터 비롯된다.

 

비트코인 채굴 광풍으로 ‘뭐 저런 것이 돈이 된다는 거지?’라고 느껴지는 ‘실물 아닌 것’에도 엄청난 부가가치가 생긴다는 것을 강하게 실감했는데 이제는 개개인의 행동이나 생각, 느낌의 데이터화된 흔적마저도 채산성을 지니는 자원이 된다니, 이제는 실제적으로 법적, 윤리적 문제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라 더 피부에 와닿는다.

 

요즘 기본소득이나 기본자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 책의 취재 내용을 들여다보면 시장주의자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돈을 받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데이터 노동자’라는 개념을 보니, 이미 사소한 정신과 육체의 움직임들 하나하나가 거래 가능한 자원이 되니 이걸 명분으로 기본소득, 기본자본을 정당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21세기의 석유라고까지 불리는 개인 데이터인 만큼(물론 채산성이 생기는 기대치는 20~30만 명이긴 하지만) 석유라는 천연자원을 깔고 앉은 나라들이 그 좋은 운으로 노력 이상의 이익을 누리고 있는 만큼, 이제는 사람의 존재와 존재성(생각,감정,움직임 등) 자체로 소득을 보장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국가나 기업들은 개인의 소중한 자원을 거저 먹으려는 도둑 심보를 버려야 할 것이다. 제대로 가치 정산을 해야 된다는 말이다.

 

일본은 ‘데이터 유통권’, 즉 세계 경제 발전의 필수 요인이 되고 있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유통하자는 ‘자유로운 데이터 유통권’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판짜기를 시도하고 있다. 데이터라는 덩어리 자원이 큰 나라나 개별 대륙 내에서 블록화되지 않도록 하는 데 중개자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일본은 데이터 경제를 자국의 경제 재부흥의 기회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그들이 중개자 운운하는지? 이미 다른 나라들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데이터 경제를 지들이 뭐라고 전지구적 틀에서 중재하고 싶다고 떠드는가? 자연스레 반감이 생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에 일본의 간절한 바람이 들어맞는 분위기인 것으로 보아 실현 가능성도 있는 모양이다.

 

 

 

 

 

 

 

한편 인터넷이 처음 등장하고 사용자가 늘어나고 그 유용성이 알려지면서 ‘집단지성’, ‘대중지성’이라는 용어가 나올만큼 사회 변혁의 원동력이 되리라는 기대가 컸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러나 실상 껍데기만 바뀌었지 사람들이 소비자로서만 기능하고 주체적인 시민으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지식의 민주화가 일어나 인류 전체의 지성이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역시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 지식에서조차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지는 시대다.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거대 정보기업들의 신독점 문제가 주요 이슈로 다뤄진다. 기업의 경우 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우도 있다. 바로 중국이다. 어떤 사람이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선을 밟고 있으니 ‘ㅇㅇ씨, 뒤로 물러나세요.’라는 음성메시지가 나오는 장면을 어떤 방송에서 봤는데, 이제 중국은 통신기술로 거의 모든 국민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었다. 실제로 국민성 자체가 개인의 권리, 안전보다 효율성, 편리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중국 정부도 국가의 통제를 당연시하는 분위기어서인지 국가가 주도하는 데이터 통제 및 국민의 경제생활 관리는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사람들의 삶이 데이터화되고 어떤 가치판단을 위해 재가공되면서 새로운 빈곤층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눈길을 끈다. 사실 이건 ‘양날의 검’ 개념이다. 지지부진한 세계 경제가 다시 한번 상승 곡선을 그리도록 하는 가능성이 데이터 자원에 있다. 발전 단계에서는 부작용이 보이지 않겠지만, 이미 신용점수 같은 데이터를 기준으로 사람의 현 상태와 미래를 전망하는 도구들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신용점수가 좋은 사람과 좋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처음에는 얼마 안 나지만 갈수록 벌어지는 악순환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신 빈곤층의 탄생이다.

 

이 책은 이렇게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시대에서 재빠르게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남겨지는 기록’들이 돈이 되는 데이터 자원이 될 수 있음을 간파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또 중국과 같이 국가 단위에서 통치 및 경제 운용을 위한 도구, 체제 유지를 위한 감시의 도구 등으로 데이터를 활용하는 현상이 중국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또 앞서 말했듯 대중지성이 아니라 여론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집단의 차원에서든 개인의 차원에서든 심리학과 결합하여 대중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도 미 대통령 선거나 미얀마의 학살 사건 등의 실례를 들어 경고한다. 결국 개인의 자유, 주체성, 공동체의 기회냐 위기냐 -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거대 정보기업들의 세련된 이윤 착취 도구로, 국가의 중앙 집권적인 통치 도구로서만 데이터가 활용되고 있는 것 같지만, 문제를 인식하고 조직적 대응에 나서는 유럽이나 시민공동체의 움직임도 수면 위에 올라와 있었다. 과연 우리나라는 이 흐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뉴스에 노출되는 정치인들의 답답한 모습 말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걸까?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앞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저자들이 하고 싶은 말은 데이터의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때에 일본이 어떻게 하면 주도적인 위치에 서서 세상을 호령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주된 관심인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쓴 책이니 그런 거야 당연하겠지만.

 

아무튼 이 책은 다가올 미래 세계의 양상을 둘 다 부정적이긴 하나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의 전망이 절묘하게 뒤섞인 ‘데이터가 모든 것’인 시대의 현재 진행 상황을 성실하게 다루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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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링의 생각하는 기계 - 인공지능(AI)의 아버지에게 배우는 컴퓨터 과학의 기초
Abe Ayame.Kasai Takumi 지음, 이아름 옮김 / 위즈플래닛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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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과학은 수학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컴퓨터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수학 지식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수학과 무관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였다. 저자 역시도 수학과 인연이 없다는 점을 밝히면서 컴퓨터 과학의 기초 이론을 조금으로도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게 하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컴퓨터 과학의 최전선에 인공지능 기술이 있다. 이미 우리는 인공지능의 위력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고 있다. 궁극의 인공지능이란 인간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고, 어쩌면 인간의 고유 영역인 의미 창조의 단계까지 발전한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비교적 최근의 학문과 기술일 것 같지만 이런 형태의 기계에 대한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인간이 살 수 있거나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생명체가 살고 있는 다른 행성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이 주제는 인류의 오래된 큰 꿈이기도 한 것이다.

 

생각하는 기계, 혹은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 주는 기계인 인공지능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기계란 무엇인가? 란 질문부터 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생각하는/계산하는 기계를 말한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인공’의 개념이다. 그럼 지능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문제가 주어졌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의 질문 형태로 정리한다.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알고리즘’이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문제를 풀어가는 절차’, 혹은 ‘절차’의 개념이다. 앞선 정의들을 정의해보면 기계가 생각하고 문제를 풀고 대답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절차를 배워야 한다는 말이 된다. 알고리즘에 대한 연구는 ‘계산 이론’이라고도 하는데, 바로 이것이 컴퓨터의 발전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키 포인트는 문제를 푸는 순서, 즉 알고리즘에 대한 연구다.

 

기계가 문제를 풀 때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고하는 부분(소프트적인 면)과 이것을 실행하는 뇌에 해당하는 부분(하드적인 면)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알고리즘을 실행하는 기계를 최초로 생각한 사람은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다. 계산기조차 없던 시대에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최근 영국BBC에서 2000년대 가장 위대한 영국인을 가리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1위를 차지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의 컴퓨터는 모두 원칙적으로 이 ‘튜링 기계’라고 하는 계산 기계의 후손이 된다.

 

 

 

 

 

 

컴퓨터의 알고리즘의 개념 정의에 있어 획기적인 발전은 ‘불완전성 정리’로 알려진 쿠르드 괴델에 의해 이뤄졌다. ‘괴델 수’라고 해서 숫자가 아닌 것을 수치로 나타내는 것을 고안했는데, 이는 세상 모든 정보를 수학적으로 처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현재 컴퓨터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데 핵심적인 사건이었다.

 

20세기 이후 컴퓨터 과학은 크게 발전하여 숫자가 아닌 다양한 개념들을 다룰 수 있게 되는데, 이때 빠질 수 없는 이론이 언어학자로 유명한 노엄 촘스키의 ‘성구구조문법’이다. 이는 엄격하게 정의된 수학적 모델인데, 그의 문법 이론은 프로그래밍 언어와 같이 인공 언어의 설계화 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번역 프로그램이나 정보를 검색하는 시스템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새로운 이론 분야를 공부할 때 먼저 여러 가지 세세한 개념을 기억해야 하는데, 이 책은 그런 기본 개념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당시 튜링이 시작한 것은 미개척 분야였으며, 형식적이지만 많은 기호가 범람하면서 난해한 부분이 많았다.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직관적이고 알기 쉽게 다듬어왔지만, 수학이라는 장벽이 아무래도 쉽게 접근하기 힘들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이 책도 기본적인 수학 지식이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독자 입장에서는 읽기에 난해한 부분이 많다고 보인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개념이 다양하다. 역설, 귀납법, 집합과 명제, 정의, 등가성, while 프로그램의 문법, 함수, 단진수, 문자열, 순서쌍과 유한열, 자연수 이론과 언어 이론, 오토마톤 이론, 대각선 논법 등등... 표현이 익숙한 개념도 있고, 처음 보는 듯 낯선 용어도 있다.튜링 기계의 수학적 모델에 대한 이해가 이 책의 핵심인데, 이해를 위해서는 차분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고, 이론적인 부분까지 파헤쳐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새롭고 즐거운 세계가 되겠고, 학창 시절 수학과 별로 친하지 않았던 독자들에게는 뭐랄까... 귀여운 책 디자인만큼 친밀한 느낌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인공지능은 우리 시대의 화두다. 그러나 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우리의 삶의 편리함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생존의 문제까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어낸 것도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적어도 이 인공지능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등장하고 발전되어 왔는지 그 흐름 정도는 역사 공부하는 마음으로 한번 살펴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생명의 근원이나 존재 이유를 상상해보거나, 혹은 종교적으로 신에게 존재의 이유를 묻듯이, 훗날 인간만큼이나 자연스러워진 ‘튜링 기계’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게 될 지도 모르니,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습관을 들여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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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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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사인 르네 톨레다노는 동료 교사의 초대로 ‘판도라의 상자’라는 최면마술쇼를 관람하게 되는데, 퇴행 최면의 피험자로 선택되어 뜻하지 않게 자신의 충격적인 전생과 마주하게 된다.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제대로 절차도 밟지 않고 최면에서 빠져 나온 르네는 경황이 없는 가운데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 불완전한 최면 때문이라 판단한 르네는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던 최면마술사 오팔 에체고옌을 찾아가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요구한다. 다시 한 번 퇴행 최면 요법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전생을 체험한 르네는 그 강렬한 감각을 잊지 못해 재차 퇴행 최면을 요구하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의 장점은 이야기보다 그의 상상력에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명이나 과학에 관한 그의 초자연적 상상의 세계를 그럴듯한 이야기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그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예전 작품인 ‘개미’나 ‘타나토노트’, ‘아버지들의 아버지’ 등과 비교하면 이야기의 전개 방식에 큰 변화가 있다거나, 메시지의 결이 새롭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과 백과사전을 교차해놓은 것 같은 진행 방식이나, 기존의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소설 외적 요소의 재미, 저승이나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와 접촉하거나 아예 이동해버리는 방식의 황당무계함은 여전한 것 같다.

 

「기억」은 예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인 「파피용」을 떠올리게도 한다. 자신들이 속해 있던 세계의 위기로 인해 소수의 인원이 다른 세계로 이주를 시도하는 설정이나, 그 과정에서 집단 내 갈등과 해소의 반복 등의 패턴이 유사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걸리버 여행기의 21세기식 각색 버전으로도 읽힌다. 결국 그의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들은 오늘날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르네는 역사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이미 익숙하게 알려진, 권위에 의해 제멋대로 해석되고 정의된 사실만이 역사의 전부가 아님을 지속적으로 피력한다. 표면적 역사에 감춰진, 혹은 이익관계에 따라 왜곡되고 삭제된 진짜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가가 현재 역사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다양한 뉴스들 때문에 대중이 진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편 르네의 열변에 대한 학생들의 무미건조한 반응과 실용적인 것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부정적 태도도 눈에 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 세대의 진실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나 무관심,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가지지 않으려는 정신적 퇴보 현상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사실인지 신화인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아틀란티스 전설을 주요 소재로 가져왔다. 예전작인 「파피용」은 새로운 인류의 거주지가 될 행성을 찾아 떠났다가 단 둘만이 살아남아 미지의 행성이 다다르게 되고, 결국 그들이 신세계의 아담과 하와가 되더라는 성경의 이미지를 차용한 독특한 결말을 보여줬는데, 이번에는 이집트 신화와 아틀란티스 전설을 교묘게 엮어내려는 시도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세계의 다양한 종교와 신화, 심리학과 고고학적, 역사학적 소재들이 흥미롭게 나열된다. 이런 풍성한 지식의 뷔페를 맛보는 것 같은 느낌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을 읽는 재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들을 섭렵한 독자들의 경우 어쩌면 이전 작품들과 비슷한 자기복제적인 감상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베르나르의 작품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라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이 작품을 소설로, 오락거리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을 먼저 본받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상상을 이야기로 꾸며내는 그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의 노력과 수고가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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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즐기기 -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닐 포스트먼 지음, 홍윤선 옮김 / 굿인포메이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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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웰이 아니라 헉슬리가 옳았을 가능성에 대한 내용이다.’(p.11)

 

이 책은 도입부부터 흥미롭다.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의 상반되는 미래에 대한 전망에서 우리는 오웰보다 헉슬리의 우려가 보다 더 현실적인 위험성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즉 우리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사회보다 우리가 즐길거리가 너무 많은 나머지 정말 중요한 것을 잃거나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위험성 말이다.

 

한때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공공영역에서의 담론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지만 외로운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 중 어떤 이들에게는 텔레비전이 위안과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공적인 영역에서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할 담론들까지 쇼비즈니스화되고 가볍게 되는 것을 경계하고 비판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우리가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정책이나 어떤 후보가 걸어온 길보다는 미디어에 노출된 그 사람의 이미지에 따라 여론이 갈리고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하는 코미디 말이다. 이성적 능력이 요구되는 영역에서 감성이 사용되는 부적절함.

 

이 책은 먼저 우리의 의사소통의 도구라고 할 수 있는 매체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의식과 언어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짚어보고 있다. 구술-구전문화에서 인쇄문화로 넘어간 후, 즉 중세 이후 인쇄문화가 발전하면서, 매체라는 형식이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에서 그 내용과 본질까지 규정한다는 것과 일반적인 대화의 형태나 사고방식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인쇄술이 특정한 종류의 내용을 배재하거나 강요할 수 있고, 특정한 종류의 수용자까지 그렇게 만드는 담론이 소통되는 구조라는 의견까지 소개되고 있다. 물론 인쇄문화로 인한 긍정적인 요소는 사람들이 좀 더 똑똑해졌다는 것이다. 링컨과 더글라스의 토론을 소개하면서 7시간이 넘는 토론을 감당할 수 있을만큼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나 인내심이 상당했다는 사례는, 5분도 가만히 앉아 남의 얘기를 잘 듣지 못하는 요즘 세태와 너무나 비교가 되었다. 이전 구전문화에서는 이런 인내심이나 지식의 보존을 위한 기억력이 더 뛰어났다는 말도 된다. 이것은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매체의 특성에 따른 지적 능력의 양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인쇄시대의 특징은 진지하고 이성적인 논쟁- 의미있는 콘텐츠(내용) 생산이 풍부했다는 것이다. 인쇄시대의 담론인 이성의 공명이 여러 분야에서 일어났다는 의미다. 인쇄문화의 지배를 받았다고 보는 시기를 저자는 ‘설명의 시대’라 명명한다. 보통 사람들도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와 추론 능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는 시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마존의 토론 문화에 대해 읽은 부분이 떠올랐다. 그들은 프레젠테이션을 하지 않고 직접 글을 써서 출력한 후 나눠주고 토론을 하는 문화를 고수하고 있다. 보다 정확하고 핵심적이고 효율적인 업무 회의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하는데, 아마존이 지금 세계적으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저변에 이런 인쇄시대의 특징이 드러나는 토론 문화가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인쇄시대를 저자는 설명의 시대라고 명명하는데,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쇼비즈니스 시대로 넘어갔다고 설명한다., 즉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모든 분야의 정보와 의사소통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오락 중심의 피카부 문화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자 중심 문화에서 생각한다는 것과 이미지 중심 문화에서 생각한다는 것의 차이는 바로 지적 능력의 양상 뿐만 아니라 속성과 질에 있어서도 퇴보를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전신이 등장하고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정보가 상품이 된다.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정보의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불필요한 정보까지 소통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된다. 정보를 통해 내 행동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비율이 대폭 낮아지고,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이나 판단이 요구되지 않는 무가치한 뉴스가 범람하게 되었다. 맥락이 있는 이해가 아닌 표면적이고 단순한 토막 이해로 지성의 형태가 전락하게 되었다. 즉 전신 이전의 시대에는 새로운 소식이 내 삶과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었는데, 전신 이후로는 그냥 즐기고 소비하는 형태로 언론의 정보 제공 가치가 변질된 것이다.

 

무의미한 정보가 쓸모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꾸며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일관성과 판단력이 결여된 세계,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세계, 정치나 종교, 교육 등 인간의 생활 문화 전반에 걸쳐 오락화되고 있는 것의 심각성을 후반부 내내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오락 자체나 오락을 즐기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오락화되어 가벼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였다. 모든 것이 쇼비즈니스화 되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수동적 관객으로 전락할 때 문화적으로 완전히 사멸하게 되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는 인상적인 문구가 많다. ‘텔레비전으로 인해 모든 경험적 표현이 자연스럽게 오락적 형태를 띄게 되었다’, ‘시각적 세계에는 생각의 여지가 거의 없다. 생각은 막간이 아닌 행간에 존재한다’, ‘시각적인 만족감을 주기 위해 사고력을 억누를 수밖에 없는 TV매체의 본질’, ‘치명적인 사실은, 실제 세계가 텔레비전이라는 무대를 통해 상영되는 모습을 본떠 점차 각색된다는 점’

 

이 책에서는 이러한 강력한 흐름의 주체로 텔레비전을 들고 있는데, 오늘로 따지면 영상 문화의 범람과 폐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반론이 가능하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위험의 핵심은 ‘일방향성’이다. 수용자가 제공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 그러나 지금 시대가 어떤가?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공유하고 여론을 만들어 현실에서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시대다. 확실히 저자의 통찰이 상호소통이 활발한 온라인 시대인 요즘에 활발히 적용하기에는 한계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 한 사람의 주체성이 온전히 회복되고 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양방향 시대라고 해서 긍정적이기만 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영양가 있는 주장이나 소신의 표현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유행을 따라 비슷한 부류들이 복제물처럼 늘어나기는 하지만 정말 사람들에게 유익하면서 독창적이고 참신한 형태의 이슈메이커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또 이 책의 가치가 재평가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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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시대를 넘나드는 통찰의 힘이 무엇이지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매체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언어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지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가는 전개방식이 지루하지 않고 읽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라는데, 학술도서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새롭게 경험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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