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즐기기 -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닐 포스트먼 지음, 홍윤선 옮김 / 굿인포메이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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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웰이 아니라 헉슬리가 옳았을 가능성에 대한 내용이다.’(p.11)

 

이 책은 도입부부터 흥미롭다.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의 상반되는 미래에 대한 전망에서 우리는 오웰보다 헉슬리의 우려가 보다 더 현실적인 위험성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즉 우리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사회보다 우리가 즐길거리가 너무 많은 나머지 정말 중요한 것을 잃거나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위험성 말이다.

 

한때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공공영역에서의 담론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지만 외로운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 중 어떤 이들에게는 텔레비전이 위안과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공적인 영역에서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할 담론들까지 쇼비즈니스화되고 가볍게 되는 것을 경계하고 비판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우리가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정책이나 어떤 후보가 걸어온 길보다는 미디어에 노출된 그 사람의 이미지에 따라 여론이 갈리고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하는 코미디 말이다. 이성적 능력이 요구되는 영역에서 감성이 사용되는 부적절함.

 

이 책은 먼저 우리의 의사소통의 도구라고 할 수 있는 매체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의식과 언어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짚어보고 있다. 구술-구전문화에서 인쇄문화로 넘어간 후, 즉 중세 이후 인쇄문화가 발전하면서, 매체라는 형식이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에서 그 내용과 본질까지 규정한다는 것과 일반적인 대화의 형태나 사고방식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인쇄술이 특정한 종류의 내용을 배재하거나 강요할 수 있고, 특정한 종류의 수용자까지 그렇게 만드는 담론이 소통되는 구조라는 의견까지 소개되고 있다. 물론 인쇄문화로 인한 긍정적인 요소는 사람들이 좀 더 똑똑해졌다는 것이다. 링컨과 더글라스의 토론을 소개하면서 7시간이 넘는 토론을 감당할 수 있을만큼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나 인내심이 상당했다는 사례는, 5분도 가만히 앉아 남의 얘기를 잘 듣지 못하는 요즘 세태와 너무나 비교가 되었다. 이전 구전문화에서는 이런 인내심이나 지식의 보존을 위한 기억력이 더 뛰어났다는 말도 된다. 이것은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매체의 특성에 따른 지적 능력의 양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인쇄시대의 특징은 진지하고 이성적인 논쟁- 의미있는 콘텐츠(내용) 생산이 풍부했다는 것이다. 인쇄시대의 담론인 이성의 공명이 여러 분야에서 일어났다는 의미다. 인쇄문화의 지배를 받았다고 보는 시기를 저자는 설명의 시대라 명명한다. 보통 사람들도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와 추론 능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는 시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마존의 토론 문화에 대해 읽은 부분이 떠올랐다. 그들은 프레젠테이션을 하지 않고 직접 글을 써서 출력한 후 나눠주고 토론을 하는 문화를 고수하고 있다. 보다 정확하고 핵심적이고 효율적인 업무 회의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하는데, 아마존이 지금 세계적으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저변에 이런 인쇄시대의 특징이 드러나는 토론 문화가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인쇄시대를 저자는 설명의 시대라고 명명하는데,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쇼비즈니스 시대로 넘어갔다고 설명한다., 즉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모든 분야의 정보와 의사소통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오락 중심의 피카부 문화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자 중심 문화에서 생각한다는 것과 이미지 중심 문화에서 생각한다는 것의 차이는 바로 지적 능력의 양상 뿐만 아니라 속성과 질에 있어서도 퇴보를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전신이 등장하고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정보가 상품이 된다.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정보의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불필요한 정보까지 소통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된다. 정보를 통해 내 행동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비율이 대폭 낮아지고,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이나 판단이 요구되지 않는 무가치한 뉴스가 범람하게 되었다. 맥락이 있는 이해가 아닌 표면적이고 단순한 토막 이해로 지성의 형태가 전락하게 되었다. 즉 전신 이전의 시대에는 새로운 소식이 내 삶과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었는데, 전신 이후로는 그냥 즐기고 소비하는 형태로 언론의 정보 제공 가치가 변질된 것이다.

 

무의미한 정보가 쓸모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꾸며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일관성과 판단력이 결여된 세계,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세계, 정치나 종교, 교육 등 인간의 생활 문화 전반에 걸쳐 오락화되고 있는 것의 심각성을 후반부 내내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오락 자체나 오락을 즐기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오락화되어 가벼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였다. 모든 것이 쇼비즈니스화 되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수동적 관객으로 전락할 때 문화적으로 완전히 사멸하게 되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는 인상적인 문구가 많다. ‘텔레비전으로 인해 모든 경험적 표현이 자연스럽게 오락적 형태를 띄게 되었다’, ‘시각적 세계에는 생각의 여지가 거의 없다. 생각은 막간이 아닌 행간에 존재한다’, ‘시각적인 만족감을 주기 위해 사고력을 억누를 수밖에 없는 TV매체의 본질’, ‘치명적인 사실은, 실제 세계가 텔레비전이라는 무대를 통해 상영되는 모습을 본떠 점차 각색된다는 점

 

이 책에서는 이러한 강력한 흐름의 주체로 텔레비전을 들고 있는데, 오늘로 따지면 영상 문화의 범람과 폐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반론이 가능하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위험의 핵심은 일방향성이다. 수용자가 제공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 그러나 지금 시대가 어떤가?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공유하고 여론을 만들어 현실에서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시대다. 확실히 저자의 통찰이 상호소통이 활발한 온라인 시대인 요즘에 활발히 적용하기에는 한계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 한 사람의 주체성이 온전히 회복되고 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양방향 시대라고 해서 긍정적이기만 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영양가 있는 주장이나 소신의 표현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유행을 따라 비슷한 부류들이 복제물처럼 늘어나기는 하지만 정말 사람들에게 유익하면서 독창적이고 참신한 형태의 이슈메이커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또 이 책의 가치가 재평가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시대를 넘나드는 통찰의 힘이 무엇이지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매체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언어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지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가는 전개방식이 지루하지 않고 읽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라는데, 학술도서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새롭게 경험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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