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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역사 교사인 르네 톨레다노는 동료 교사의 초대로 ‘판도라의 상자’라는 최면마술쇼를 관람하게 되는데, 퇴행 최면의 피험자로 선택되어 뜻하지 않게 자신의 충격적인 전생과 마주하게 된다.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제대로 절차도 밟지 않고 최면에서 빠져 나온 르네는 경황이 없는 가운데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 불완전한 최면 때문이라 판단한 르네는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던 최면마술사 오팔 에체고옌을 찾아가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요구한다. 다시 한 번 퇴행 최면 요법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전생을 체험한 르네는 그 강렬한 감각을 잊지 못해 재차 퇴행 최면을 요구하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의 장점은 이야기보다 그의 상상력에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명이나 과학에 관한 그의 초자연적 상상의 세계를 그럴듯한 이야기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그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예전 작품인 ‘개미’나 ‘타나토노트’, ‘아버지들의 아버지’ 등과 비교하면 이야기의 전개 방식에 큰 변화가 있다거나, 메시지의 결이 새롭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과 백과사전을 교차해놓은 것 같은 진행 방식이나, 기존의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소설 외적 요소의 재미, 저승이나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와 접촉하거나 아예 이동해버리는 방식의 황당무계함은 여전한 것 같다.
「기억」은 예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인 「파피용」을 떠올리게도 한다. 자신들이 속해 있던 세계의 위기로 인해 소수의 인원이 다른 세계로 이주를 시도하는 설정이나, 그 과정에서 집단 내 갈등과 해소의 반복 등의 패턴이 유사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걸리버 여행기의 21세기식 각색 버전으로도 읽힌다. 결국 그의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들은 오늘날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르네는 역사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이미 익숙하게 알려진, 권위에 의해 제멋대로 해석되고 정의된 사실만이 역사의 전부가 아님을 지속적으로 피력한다. 표면적 역사에 감춰진, 혹은 이익관계에 따라 왜곡되고 삭제된 진짜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가가 현재 역사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다양한 뉴스들 때문에 대중이 진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편 르네의 열변에 대한 학생들의 무미건조한 반응과 실용적인 것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부정적 태도도 눈에 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 세대의 진실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나 무관심,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가지지 않으려는 정신적 퇴보 현상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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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사실인지 신화인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아틀란티스 전설을 주요 소재로 가져왔다. 예전작인 「파피용」은 새로운 인류의 거주지가 될 행성을 찾아 떠났다가 단 둘만이 살아남아 미지의 행성이 다다르게 되고, 결국 그들이 신세계의 아담과 하와가 되더라는 성경의 이미지를 차용한 독특한 결말을 보여줬는데, 이번에는 이집트 신화와 아틀란티스 전설을 교묘게 엮어내려는 시도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세계의 다양한 종교와 신화, 심리학과 고고학적, 역사학적 소재들이 흥미롭게 나열된다. 이런 풍성한 지식의 뷔페를 맛보는 것 같은 느낌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을 읽는 재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들을 섭렵한 독자들의 경우 어쩌면 이전 작품들과 비슷한 자기복제적인 감상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베르나르의 작품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라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이 작품을 소설로, 오락거리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을 먼저 본받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상상을 이야기로 꾸며내는 그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의 노력과 수고가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