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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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발터 벤야민은 독서가들에게 꿈의 영역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글들은 한 시대를 관통했던 위대한 지식인의 통찰이 무엇인지를 오롯이 보여준다. 나 역시 그런 점에 이끌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들을 몇 권 사놓긴 했으나 아직 제대로 접해보지 못하고 있어 아쉬워하던 차에, 어쩌면 그의 사상과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입문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 책, 『고독의 이야기들』을 읽게 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1892년에 태어난 독일 출신의 철학자이자 문예이론가, 문화비평가로, 마르크스주의와 유대 신비주의, 문학과 예술, 역사철학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사유로 현대 비판이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는 예술의 아우라(aura) 개념을 통해 전통 예술이 지닌 독특함과 권위가 대중매체의 발달로 사라지는 현상을 분석했다.

그는 대중문화, 사진, 영화, 도시경험 등을 날카롭게 통찰하며 예술과 인간 경험의 변화에 주목했고, 역사를 단절과 충돌의 연속으로 보는 비판적 역사관을 제시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 중이던 그는 자신의 뜻을 더 이상 이룰 수 없다는 절망감을 이길 수 없었던 나머지, 1940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고독의 이야기들』은 그의 이름 아래 묶인 유일한 문학작품집이라고 한다. 이 책은 크게 1부 꿈과 몽상, 2부 여행, 3부 놀이와 교육론, 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읽다 보면서 느낀 것은 모두가 꿈 이야기 같다는 것이었다. 어떤 특정한 스토리나 사상, 메시지를 전달한다기보다, 벤야민이 당시 경험했던 시대의 분위기나 사회적, 문화적 흐름에서 얻은 인상을 몇몇 압축적인 단어와 표현으로 전달하고 있는 느낌이다. 달리 말하자면, 미술 작품의 크로키 기법 같은 느낌이다.

책 후반부에는 김창완 씨의 노래인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를 연상시키는 언어유희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문장 놀이의 원형이 발터 벤야민이었던가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도 나온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지난 장갑에 가을을 잃어버렸어’, ‘사람 하나에 세 의자가 앉아 있었어’, ‘얼른 안녕을 벗고 “모자하세요”라고 말했지’, ‘안부가 아버지 전해달라더라’ 등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고 나서 발터 벤야민 사상 이해를 위한 입문서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서구 유럽의 주요 문학가, 사상가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면 오히려 그의 자유로운 발상과 문체, 이야기 전달 방식이 더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의 형편이 그러할 터인데, 그렇다면 이 책은 또 하나의 숙제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독의 경험을 남겼기에, 다음번에는 조금은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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