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는 신들조차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전쟁의 신 아레스나 여신 아테나조차 각자의 편을 들어 싸움에 개입한다. 인간은 신들의 장난감 같고, 운명의 꼭두각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작품은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순간-죽음을 애도하고, 복수 대신 용서를 선택하는 순간-을 가장 숭고하게 묘사한다. 신의 영역을 넘는 인간의 고통과 용서는, 비록 전쟁을 막을 수 없을지라도, 그 전쟁 속에서 빛나는 인간성의 조각으로 남는다.
결국 우리는 『일리아스』를 통해 ‘전쟁’보다는 ‘사람’을 보게 된다. 싸움보다는 고통을, 영웅보다는 아들의 시신을 위해 눈물 흘리는 아버지를. 거대한 역사 속에서 인간은 너무나 작고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바로 그 나약함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삼국지』에서 수많은 전투 장면보다 관우의 의리나 유비의 울음이 오래 기억에 남듯, 『일리아스』에서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 그 죽음을 둘러싼 감정과 연민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쟁 속에서 인간은 사랑하고, 슬퍼하고, 후회한다. 그것이 『일리아스』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