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강준만은 분명히 한국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 중 하나이다. 최근에 낸 책들, 이를테면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 이나 한국사 시리즈의 분량과 참고목록을 보면 가끔 나는 강준만이 몇 명의 죽이 맞는 합리적 자유주의자들의 공통필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사진은 가장 그중 잘생긴 사람일 거고. 인터뷰를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것도 의심스럽다. ^^농담은 그만하고,

사실, 대학교수들에게 이런 다작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대개의 교수들은 제자들의 손과 머리를 빌려 책을 만들어내곤 하니까. 이건 꽤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학자에게조차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관행이다. 너무 만연하면 죄의식따위는 없어지는 법.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강준만이 이런 짓을 할 리는 없다. 그는 한국의 이른바 모든 비상식적 인 관행과 싸우는 사람이다. 왜 그에게 이런 습속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여간에 앞에서 농담처럼 말한 인터뷰 거절 역시 그러한 싸우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것이다. 말이라는 것은 글과 달리 아주 쉽게 기의와 벗어나는 언어로 포장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을 읽으면서 나는 점차적으로 그가 세상과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증세가 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번째는 그의 이 책이 시사적인 일종의 교양사전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철저하게 2차자료들에 기반해 작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의 거의 모든 '사실'들은 그의 책상 위에서 신문과 저서들에 의해 작성된 것이지 그가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후 강준만의 개인적인 그에 대한 해설이랄까 코멘트가 붙는다.

그 중에서도 단연 그가 의존하는 것은 신문이다. 신방과 교수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 저서의 신문에 대한 의존도는 지나치다. 물론 그의 날카로운 눈에는 감탄을 표한다. 수많은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분류해서 자신이 택한 주제들마다 그에 대한 적절한 기사들을 인용하는 것은 경이로운 그의 부지런함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그러나,

예를 들어 싸이월드 붐, 펑크(punk)와 같은 역동적이고 체험 위주인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그는 실제로 이것들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2차자료들에 의존해 해설하고, 해석하고, 논평한다. 그래서일까? 이런 부분들에 대한 그의 이해는 대단히 피상적이고, 2차자료의 해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두번째이다. 이 책은 그의 책 답지 않게 너무나 얌전하다. 한 마디로 논쟁을 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토픽마다 코멘트가 달려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대부분 비정치적이고 논란이 적은 토픽에 한한다. 정치적인, 혹은 논란이 될 분야로 가면 그는 철저하게 2차자료를 스크랩하는 가위쟁이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한다.

이를테면 신행정수도에 대한 그의 긴 글에는 그의 생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단지 이에 대한 찬반논쟁을 담은 각 신문의 사설들을 지리하게 늘어놓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게으른 학자들이나 할 행동을 다른 이도 아닌 강준만이 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그의
'사전임을 주장하는 건 압축·포괄·공정에 주력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 이라는 서문을 인정한다고 치자.  강준만이라고 해서 반드시 주장이 강한 글만을 써야 한다고 보는 것도 편견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책 전반적으로 그는 여전히 할 말이 많다.  별로 민감하지 않은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다운 입담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독 정치적인 것에 대해서만 입을 다문다.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난 해 그가 받은 상처를 그는 여전히 삭히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꽤나 석연치 않다. 또 신행정수도 글을 예로 들어보자, 이제까지 그의 저서에서 예외없이 비판하기 위해서만 인용해 왔던 조선, 동아와 같은 과점신문들의 텍스트들을 그는 아무런 코멘트 없이 나열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텍스트들에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억지춘향식 해석이라고? 다른 사람도 아닌 '강준만'이 조선일보의 그냥 문화면도 아닌 '사설'을 유력한 논리로 소개하고 있단 말이다!)

이것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간단하다. 평소에 그는 조선일보같은 매체들이 당파성을 감추기 위해 교묘하게 내세우는 기계적 중립 내지 객관적인 기사쓰기를 늘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이 텍스트는 바로 그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율배반적이다.
 
결국 그는 서문에서 거짓말을 한 셈이다. 그는 여전히 정치적이다. 그 증거는 또 있다. 서평에서도 나왔지만 유독 인터넷(과 그속에서 담론이 형성되는 방식)에 대해 그는 마뜩찮은 눈길을 보낸다. 아니, 거의 악담에 가까운 비판을 가한다. 이 역시 그가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공격받았던 대상, 혹은 그들의 매체에 대해 담고 있는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이 모든 태도들은 좋은 글쟁이, 거의 몇 없는 합리적 자유주의자, 성역파괴자를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2차 자료가 주지 못하는 세상의 역동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거부하거나, 자신이 받은 상처로 인해 그의 최대의 장점을 스스로 포기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혹시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드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그럼에도, 비정치적인 주제에서 그의 시선은 여전히 유려하고 통찰력은 빛난다.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구입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된다. 언젠가는 그가 이번 충격을 극복하고 돌아올 거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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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리릿 2005-02-07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처받은 강준만.. 상처받은 강준만...
대통령 노무현과 상처받은 강준만...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강준만 교수에 대한 표현 중 '상처받은'이라는 수식이 젤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강준만 교수의 진솔하고 거침없는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숨은아이 2005-05-27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었습니다.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marine 2005-06-14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이 자기 의견 대신 신문 자료에 의존해서 가위질로 책 한 권 만드는 건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그는 지나치게 자료에 의존하죠 희생양과 죄의식에서는 정말 신문 짜집기에 불과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