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타임 경제학
스티븐 랜즈버그 지음, 황해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1/3쯤 읽다가 접었다.  그러나 책이 나빠서는 아니다. 그렇다면 왜일까? 리뷰 제목에 힌트가 있다. 눈치빠른 사람이라면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번역이 너무나 형편없다. 글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을 뿐더러, 때로는 도저히 무슨 맥락에서 쓴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글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직독직해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나쁜 번역책을 볼 때 흔히 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즉. '무슨 단어를 이렇게 번역한 걸까?'를 역으로 유추해서 영문으로 재구성한 다음 생각해 보면 이해가 어느정도 가게 된다. 이런 번역자는 미안하지만 번역료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본다.

내가 잘났다거나 영어를 잘한다는 자랑하는 게 아니다. 난  경제학 전공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경제학에서 흔히 미시경제학 문제로 나오는 내용들이다. (몇 년간 경제학을 전혀 접할 기회가 없어서 제목과 목차를 보고 경제학 마인드를 잃지 않기 위해 샀던 책이다)  그래서 대략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감이 잡힌다. 그런데 번역 탓에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예를 들어보자. 58페이지이다. 액션영화를 보고픈 필자와 멜로영화를 보고픈 아내가 결정하는 과정이다.

"아내와 나는 각자 종이에 금액을 적었다. 높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이 원하는 영화를 보기로 하고 진 사람의 금액만큼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내게 영화는 8달러의 가치가 있었다. 내가 이기면 나는 아내가 적은 금액만큼 기부금을 내야 했기 때문에 내 아내가 8달러보다 낮은 금액을 써서 내가 원하는 영화를 보거나, 아내가 그 이상을 적어 내가 지는 것을 기대했다.나는 정확히 8달러를 적어서 위와 같은 결과를 보증할 수 있었다."

무슨 이야기일까?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어려운 내용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재번역을 통해 내가 다시 구성한 뒤 우리말로 옮긴 내용은 이런 것이다.

"아내와 나는 각자 종이에 금액을 적었다. 높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이 이기되, 이긴 사람은 진 사람이 적은 금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규칙이다. 내가 액션영화에 매긴 가치는 8달러이다. 내가 이기면 나는 아내가 적은 금액을 지불하는 셈이기 때문에, 아내가 8달러보다 낮은 금액을 쓰면 내가 매긴 가치보다 적은 돈을 내고 액션영화를 보는 것이 되고, 아내가 그 이상을 적어서 내가 지면 보기 싫은 멜로영화를 공짜로 보면 그만이다. 따라서 나는 정확히 8달러를 적어내면 된다 ."

번역은 직역, 해석이 아니다. 때로는 어려운 문맥을 쉽게 풀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결과를 보증할 수 있었다."는 말은 아주 전형적인 번역체, 영어에서나 쓰는 표현이다. 국어에 소양이 없거나, 시간에 쫓겼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리고 굳이 책에 대해 흠을 더 잡는다면, 우선, 이 책은 미국에서 90년대 초에 나온 책이다. 드는 예들이 좀 진부하다.  그걸 메꾼다고 우리나라 출판사측에서 최신 사진들을 삽화처럼 삽입했는데, 좀 생뚱맞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 교수는 매우 보수적인 미시경제학자이다. 대부분의 미국 주류 경제학자들이 이런 입장이지만, 이 사람은 좀 강한 보수주의자로 보인다. 오해마라. 고리타분하게 보수=악 이런 관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에는 이런 관점도 있지만 다른 관점도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서 읽으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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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7-07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지금 읽고 있습니다 ㅜㅜ 대략 안넘어갑니다. 예도 진부하지만, 우리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고, 번역도 껄끄럽고, 그러네요.

냥냥 2006-04-1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는 경제학전공자는 아니라 경제학자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내용도 별로던데요? 이슈에비해 내용이 허접...게다가 저는 오타도 발견해서 볼펜으로 고쳐놨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