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코드 - Illustrated Edition
댄 브라운 지음, 이창식 번역감수,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은 당연히 다 빈치이다. 영어 사전에서 르네상스 사람(renaissance man)을 찾아보라. 아마도 대부분의 사전은 "다방면, 특히 예술과 과학에 능통한 이를 일컫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을 것이다. 다 빈치로부터 나온 단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의이다.

모든 것이 분화되고 전문화되어있는 현대사회에서 '르네상스 사람'은 점점 더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특히 검색엔진에 단어 하나만 쳐 넣으면 바로 답을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의 등장은 때때로 주위에서 보이던 '만물박사'들이 설 자리를 뺏아간다. 이런 현실 속에서 현대의 르네상스 사람으로 제일 먼저 지목될 대표주자는 아무래도 이탈리아의 지성 움베르토 에코일 것이다.

기호학자로 시작해서 문명비평가, 논술 전문가,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소설들에서 예외없이 다방면에 걸친 박식함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나라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인의 모습을 재현해내고 있다.

길게 돌아왔다. 뜬끔없이 에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소설에 대해 수많은 이들이 에코의 소설들, 특히 '장미의 이름' 과 '푸코의 진자'를 언급하면서 비교하기 때문이다. 독자들 뿐만 아니라 저자와 출판사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는 듯 이 책의 영문판 표지에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의 'Umberto Eco on steroids' 라는 서평 문구가 인용되어 있다.

그런데 인터넷이나 신문등에서 접하는 서평들은 대체로 너무나 일률적이다. "에코 소설처럼 다양한 비밀결사에 대한 지식들을 인용하긴 하지만 이 소설은 에코의 소설에 비래 깊이가 부족하고 너무나 헐리우드 영화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 결국 에코의 (훌륭한)소설들과 이 (대중)소설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들은 흡사 어떤 헐리우드 영화이건 '이 영화는 허술한 이야기구조와 전개를 화려한 영상으로 커버하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진부한 시간때우기 작품이다'라고 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평가일 뿐이다.

우선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이 이 소설을 깎아내리며 만신전에 모신 '장미의 이름'이나 '푸코의 진자'는 무엇이 다른가? 내 생각에 에코의 소설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다 빈치 코드와 다를 바 없는 재미를 위한 대중소설일 따름이다. 정교하게 재현한 중세의 풍습이나 방대한 유럽의 비밀결사에 대한 인용이 있다고 그 소설들이 학술서가 되는가?  그 모든 것들은 다 빈치 코드의 인용과 마찬가지로 소설적 재미를 더하기 위한 장치일 따름이다.

다음으로 다 빈치 코드의 구성은 정말로 엉성한가? 최근에 읽은 미국 대중소설들 중에 이 정도로 치밀하고 정교한 이야기구조를 갖춘 소설은 그리 흔하지 않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발로 뛰어서 얻은 수많은 지식을 인용'하면서도 그것들을 나열하다가 이야기 구조를 잃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초보 작가들이 취재거리를 소설화하는 과정에서 버리기 아까워 무리하게 끼워넣다가 이야기의 일관성을 망친다. 반면 이 소설은 어떤 인용들도 전체 스토리의 흐름을 해칠 만큼 튀거나 무리하게 인용되지 않았다. 사실 이야기 구조만 놓고 보면 너무 많은 비밀결사에 대한 인용으로 이야기의 핍진성을 놓쳐버린 '푸코의 진자'보다 훨씬 낫다고 보겠다.

물론 '장미의 이름'이나 '푸코의 진자'는 이 소설과는 다른 층위에 있다. 그 소설들 속에는 에코가 평생을 천착해 온 기호와 사물간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면의 사상을 읽어내고 감탄할 독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에코 자신도 독자의 다수가 그러한 책읽기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소설이 위대한 것은 그러한 깊이있는 지식과 통찰력이 없는 이들에게도 충분히 훌륭한(그리고 재미있는) 소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렇게 표면적으로만 드러난 것만을 읽을 때, 앞에서 말했듯이 에코의 소설들과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적당한 수준의 현학들이 만들어내는 지적인 재미를 즐기면 그만이다. 시중에  '멍청한 내용에 엉성한 구조의 소설들'이나, '현학적인 내용을 어렵게 풀어서 누구도 즐기지 못하게 만드는 수면용 책들'이 넘쳐나는데 굳이 에코라는 현대의 유일무이한 르네상스 사람의 책과 비교해서 이 책을 그렇게들 깎아 내리는데는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 동메달을 금메달과 비교하면서 깎아내리기보다, 수많은 탈락자들과 비교해 훌륭하다고 칭찬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르미안 2005-09-13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글이네요.. 저도 장미의 이름과 다빈치 코드를 비교하면서 글을 올렸었는데.. 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도 충분히 동감이 갑니다.
단지,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처음 기호학을 대중에게 다가가게 한 에코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가 아닐까요. 물론 세계적으로 그렇다기 보다는 국내 독자들에게요.
그런 면에서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많이 거론되는 거 아닐까요.
좋은 글 잘 읽었고, 다시 한번 다빈치 코드와 장미의 이름, 그리고 기호학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