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지음, 지주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잃어버린 프루스트적 순간을 찾아서: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는 원제가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 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보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과 더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러 명의 철학자 대신 한 명의 작가를 골라 그의 삶과 소설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 지 알려준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 '박카스'라면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는 '비타 500'에 가깝다고 할까. 굳이 약국에 가지 않고도 슈퍼마켓에서 만날 수 있는 '비타 500'처럼 우리는 철학자가 아닌 작가를 만날 때는 그 효용적인 가치를 따지지 않고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우선 마르셀 프루스트의 삶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자. 마르셀 프루스트는 19세기 말 부유한 의사집안에서 태어나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머니 아래서 자라났다. 그는 젊은 시절 일은 안 하고 파티나 쫒아 다녔는데, 도서관의 무급직으로 일년에 한 두번 나갈까 말까, 도서관 역사상 가장 긴 병가를 요청하다 5년 만에 해고되었을 정도다. 한 마디로 '그는 전혀 창작에 열의가 없었고 만찬파티를 열고 차를 마시러 나가고 돈을 물처럼 쓰면서 즐거운 삶을 살았다.'  바람직한 삶이다.


그러나 그는 부모가 모두 죽은 다음 드디어 글을 쓸 결심을 했다! (개인적으로 힘들게 왜 그런 결심을 했을까 싶지만 나와 달리 세계문학사는 어머니의 죽음에 무엇보다 감사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51살이라는 나이에 어느 파티에 초대받았다 감기에 걸려 죽을 때까지(외투 3벌과 담요 2장을 몸에 두르고 외출했는데도) 20여년 가까이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계속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 쓰면서 살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글렌 굴드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못 말리는 '건강 염려증' 환자였던 그가 감기로 인해 글쓰기가 중단될까봐 주사도 맞지 않은 채 '뜨거운 우유, 커피와 익힌 과일만을 먹고 마시며 계속 글을 썼'던 것이다. (그의 건강 염려증은 이 정도였다.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통고할 때마다 자신이 곧 죽을 거라고 말했다... 방안을 걷기는 커녕 창문을 열기조차 힘들도록 아프다... 그는 자신의 평시 상태를 카페인, 아스피린, 천식, 협십증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으며 일주일 중 엿새 동안을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와 부딪히고도 멀쩡했다던 그의 남동생과는 달리!) 결국 폐렴으로 고생하다 숨을 거둔 부분을 읽을 때는 너무 감동이어서 가슴이 뻐근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제 이제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책임감 있는 접근법"을 아래에 나오는 9가지 방식으로 알아보자. 1.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 2.자신을 위한 독서법. 3.여유 있게 사는 법. 4.훌륭하게 고통을 견디는 법. 5.감정을 표현하는 법. 6.좋은 친구가 되는 법. 7.일상에 눈을 뜨는 법. 8.행복한 사랑을 하는 법. 9.책을 치워버리는 법이다. 그 중에서 3. 여유있게 사는 법에 대해 알아보자.

 

3. 여유있게 사는 법: 프루스트의 남동생인 로베르가 썼듯이 '슬픈 일은 사람들이 매우 아프거나 다리가 부러지지 않고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하의 게으르스트인 나도 3권이나마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이 백수로 2년간 놀았기 때문이니까. 그 중에서 로마에 살고 있는 미녀는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말고는 저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소설의 길이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全) 잉글랜드 프루스트 요약 경연대회'라는 것까지 생겼다고 한다. 영국 남부의 휴양지에서 한 극단이 주최하는 이 대회는 프루스트의 작품 7권을 15초 동안에 요약하고 수영복과 야회복에 옮기는 거라나 하하하. 그러나 그 대회가 증명한 것은 압축하지 않고 자르지 않았을 때 프루스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빨리 하지 않을 때 우리를 유혹하는 마카롱 쿠키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4. 훌륭하게 고통을 견디는 법: 환자 제 1호 베르뒤랭 부인. 환자 제 2호 프랑수아즈 등 소설 속의 주인공을 통해서 고통을 견디는 방법을 알려준다.


5. 감정을 표현하는 법: 틀에 박히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틀에 박히지 않은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다.


6. 좋은 친구가 되는 법: 그는 소파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배우자!

 

7. 일상에 눈을 뜨는 법: '좋은 삶이란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부당하게 무시하고 헛되이 다른 것을 갈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발상의 전환을 의미했다.' 우연히 본 마들렌 하나에 어린 시절 레오니 아줌마가 홍차에 찍어서 주시던 것과 똑같은 마들렌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 사소한 일상의 재발견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책을 쓰기 전까지 그의 주소록에는 고상한 이름들만이 있었고, 언제나 리츠호텔에 갔으며, 앙드레 지드가 강박증에 걸린 사교계의 명사라고 작품 출판을 거절했을 정도로 파티광이었지만, 말년에는 일상에서 다른 친구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친구들 중 많은 숫자가 공작이나 대공에서 시종과 운전사로 대체되었다.


8. 행복한 사랑을 하는 법: 재미없었다


9. 책을 치워버리는 법: 나 역시 마르셀 프루스트가 앙드레 지드에게 했다는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시대 사람들 사이에서의 일반적인 풍조와는 반대로 나는 한 사람이 문학에 대해 매우 고결한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동시에 그것을 악의 없이 비웃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알랭 드 보통은 사랑에서 철학을 발견하는 실용주의자답게 마르셀 프루스트를 발견하고 조롱하며 숭배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독자의 일방적인 미화만은 경계한다. '일리에 콩브레'를 방문해봤자 그 땅은 어디 가도 볼 수 있는 평범한 땅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방문해야 할 것은 일리에 콩브레가 아니다. 프루스트에 대한 참된 경의란 그의 눈을 통해서 우리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지, 우리의 눈을 통해서 그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아,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우리는 알랭 드 보통이 마르셀 프루스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눈을 통해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세계를 바라보도록 만드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을 여주인공에게 부여하지 않고서는 소설을 읽을 수 없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우리는 알랭 드 보통의 특징을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부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책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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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7-13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간만에 나타나서 이런 멋진 리뷰를.... ^^

히나 2006-07-13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반가워요 절 잊지 않으셨군요 ㅠㅠ

치니 2006-07-13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이 정도 되면 아무리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별반 큰 감동이 없었어도 또 집어넣고야 말겠는데요. 추천! ^-^

urblue 2006-07-13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소파랑은 원래 금방 친해지지 않아요? ㅎㅎ

sudan 2006-07-1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게 누구셔요?

sudan 2006-07-1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집에 소파가 없어서 침대랑 친해졌어요. 근데 왜 행복한 사랑을 하는 방법이 재미 없었을까아? (스노드랍양 반가워요. ^^ )

가시장미 2006-07-13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선 네이버까지 가는거 힘들었는데 잘됐군요! 으흐흐흐 :) 드랍언니~ 할라당!

가시장미 2006-07-14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리뷰랑 페이퍼도 보여달라! 보여달라! 으흐흐흐

히나 2006-07-1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고맙습니다 요즘은 책도 안 읽어서 예전에 쓴 거 다시 올려요 -.-;

블루님. 아 집에 쇼파가 없어서.. 생기면 한번 친해질까봐요 ㅋㅋ

수단님. 저도 침대와는 떨어지면 죽고 못 사는 각별한 사이예요 반가워요 ^^

장미님. 리뷰는 언제나 열어두는 걸. 페이퍼는 흠.. 생각해보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