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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 로버트 레슬러는 FBI의 범죄자 프로파일링 시스템을 정립한 인물로, 1970년대에 영단어 Serial killer 를 처음 고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찰스 맨슨과 같은 악명높은 살인범들과 면담을 나눴고, 레슬러의 이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는 살인을 유형화 하고 살인범들의 심리를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존 유저 Michael J. Tresca는 ˝미국 시민들은 로버트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말했는데, 범죄 심리학에 대한 그의 선구자적 통찰력과 헌신을 생각해보면, 그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이들은 비단 미국인들 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의 원제는 <Whoever Fights Monster>로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 등장하는 유명한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격언의 경고대로, 레슬러는 시종일관 냉정하고 침착한 서술을 이어나간다. 연쇄살인을 다룬 대부분의 책들은 범죄 현장 등을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하며 선정적인 필치로 피해자를 대상화하고 그들의 고통을 전시하는데, 이 부분에서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는 어느 정도 윤리를 지킨 편이다. 실제로 레슬러는 책에서 피해자들의 비인간화와 살인범들에 대한 매체의 자극적인 보도 등에 대한 우려를 여러 번 표하기도 한다.
책의 1장은 리처드 트렌튼 체이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레슬러는 이 끔찍한 살인범을 잡는데 프로파일링 기법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설명하며, 이어지는 장에서 자신이 어떻게 범죄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프로파일링은 왜 필요하며 어쩌다 살인자들을 면담할 생각을 했는지 등등을 얘기한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못지 않게 레슬러가 묘사하는 FBI라는 조직의 분위기도 흥미로운데, 저자는 FBI를 관료적이고 답답한 곳으로 묘사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범죄자 프로파일링 시스템을 개척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한 저자의 헌신이 놀라울 뿐이다.
4장에서 레슬러는 살인자들의 특징을 설명한다. 어떤 이들이 연쇄 살인자가 되는가? 이들은 모두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일찍부터 이상 행동을 보였다. 또 이들 모두 극도의 성적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었고, 어릴 때 부터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인 판타지를 품고 있었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내는 사람은 많지만, 대다수는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며 사람들을 죽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학교와 사회복지단체, 이웃들의 무관심이 더해진다면 아이의 문제는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다. 애정이 없는 어머니, 학대를 일삼는 아버지나 형제들, 손놓고 구경만 하는 학교, 있어도 소용이 없는 사회복지단체, 다른 사람들과 정상적인 성관계를 맺지 못하는 본인의 무능력 등은 이상성격자를 만들어내기에 딱 좋은 조건이다.˝
결국 범인의 개인적 기질 외에도 사회의 무능과 무관심이 연쇄 살인범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그 수가 늘고 있는 아동학대 사례들을 그냥 좌시해서는 안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이웃과 사회의 무관심, 그리고 아이의 병든 마음이 혼합되어 후일 더 끔찍한 범죄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6장에선 살인범들의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소개한다. 조직적 살인범과 비조직적 살인범, 그리고 이 두 유형의 특징을 공유하는 혼합형 살인범이 그것이다.
살인은 범행 전 단계->범죄 실행 단계->시체 처리 단계->범행 후 행동 단계, 이 네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조직적 살인범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이들이 범행을 계획하는 것이며 충동이 아닌 계획의 결과로 피해자들을 죽인다는 것이다. 이들은 언변이 좋고 지능도 높은 편이며 피해자를 인격체로 인지한다. 이들의 특징은 ‘계획적‘이란 갓이기 때문에 , 살인의 단계별로 범인의 논리가 나타난다.
반대로 비조직적 살인범의 범행은 정상적인 논리를 결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외향적이고 매력적인 조직적 살인범들에 비해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아웃사이더들이다. 이들은 차를 몰 수조차 없을 정도로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책 초반에 소개된 살인범 체이스가 전형적인 비조직적 살인범이다.
나머지 장에서 레슬러는 프로파일링 기법을 실제 사건에 적용한 사례들을 들려주거나 면담 중 살인범들과 있었던 해프닝 등을 전한다. 재밌는 것은, 레슬러가 책의 후반부에서 여러번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반전운동이나 반문화 운동에 대한 냉소적인 언급 등,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서 평생 공화당에만 투표했을 것 같은 보수적인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의외였다. 레슬러가 연쇄 살인범들의 교화 가능성을 믿는다던가 하는 윤리적 이유로 사형제 폐지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철저히 실용적인 연구자의 입장에서 사형제의 폐지를 주장한다. 한 명의 죄수를 사형시키는 데 드는 법정 비용이 막대하고 , 그러느니 차라리 그들을 살려두고 면담 등을 통해 그 심리를 연구하는 편이 훨씬 더 사회에 이익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의 효과를 내지도 못한다는 범죄학자들의 의견을 인용하며 ˝사형은 단지 복수를 원하는 희생자의 가족이나 일반 대중을 만족시켜줄 뿐˝ 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프로파일링 기법이 어떻게 확립되었으며 FBI가 이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는지, 또 이것이 어떻게 실제 살인 사건에 적용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지나치게 선정적이지도 않으면서 (하지만 주제가 주제인 만큼 잔혹한 내용은 피할 수 없다) 알찬 정보들이 많이 담겨 있다. 지난 2013년, 파킨슨 병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 저자 로버트 레슬러의 헌신적인 노력과 공로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