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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평점 :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침으로써 세상을 향한 열린 문을 열어주자는 클레멘트 코스가 시작된다. 5년전 뉴욕의 남동부 지역에서 처음 출발한 이 과정은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 희망자를 받아 철학, 문학, 예술, 역사, 논리학 등을 가르쳤다. 대학 교수 또는 연구자로 일하는 최고의 강의자들이 대학 교양 수준에 상응하는 최고의 인문학을 가르쳤고, 이 과정을 이수한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적 교양을 체득해서 나가게 된다.
도대체 어떤 의도에서 였을까. 당장 눈 앞에 있는 의식주 문제의 해소보다는 본질적인 삶의 의미를 던져주고 싶었을까. 아니면 가난한 자의 의식을 변화시켜 사회 변혁의 도구로 쓰려는 정치적 의도가 들어있는 것일까. 가장 궁금했던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의 목적은 책을 읽기 전 피상적으로 떠오르는 것들과는 달랐다.
저자에 따르면, 인문학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가족에서 지역사회로,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로 이어지는 ''공적 세계(public world)''로 이끄는 것이 교육과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개인적''인 세계 속에 머물러 있는데 이것은 ''무력(force)''에 의해 지배되는 영역이다. 이들을 ''공적'' 세계, 즉 정치적 삶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은 인문학에 의해서 인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저자는 자신의 사상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며 (사실 양쪽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고), 굳이 설명하자면 ''자치(autonomy)''의 추구라고 말한다. 인문학의 오랜 전통이며 지향점이었던 ''자치''. 이것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며, 결코 소수의 전유물이 된 인문학을 시혜하는 입장이 아님을 강조한다. ''급진적 인문학''이라는 그의 표현은 인문학 속에 내재된 급진성을 오백여년전 르네상스기 만큼이나 오늘날에도 강렬하게 와닿게 한다.
이 책의 전반부는 사실 ''인문학'' 서적을 읽는 것처럼 어려웠다. 부자, 빈곤, 무력, 노동, 시민의식 등 하나의 논문을 보는 것처럼 일관되고 논리적으로 이론을 풀어가고 있다. 구체적인 사실과 사례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클레멘트 코스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이 책의 후반부가 훨씬 읽기 편했다. 그러나 저자의 목적의식과 클레멘트 코스의 토대를 알지 않고서는 전체적인 이해와 조망이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터.
인문학의 위기를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혹자는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자''의 위기라고 꼬집기도 한다. 인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기에 자신과 타자를 냉철하게 이해하고 나아가 사회와 국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큰 힘이 된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인문학의 부재는 사고의 기반을 허약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이 인간다운 삶의 ''희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중한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저자와 그의 동료들의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 기억나는 대목 : 클레멘트 코스를 수료한 사람이 직장에서 크게 싸울만한 일이 생겼는데, 그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소크라테스라면 어떻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