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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경성 -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 아래 선명한 ‘樂喜’京城. 일제 강점기에 ‘럭키’를 한자어로 그렇게 썼나보다. 작년 여름 같은 저자의 책 [경성기담]을 인상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올 여름에도 선택한 책. 똑같이 1920-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돈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일반 역사서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오늘날 증권으로 천당과 지옥을 하루 만에 오갈 수 있다면, 그 때는 ‘미두(米豆)’가 있었다. 쌀 가격을 알아 맞추는 도박인 미두로 엄청난 거부가 되고 멋진 여성과 결혼하였으나, 2년도 안되어 쪽박을 찬 반지로의 인생 역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가 돈으로 결혼했던 여성 뿐만 아니라 그 동생인 '원동 재킷'의 사연도 얼마나 흥미롭던지. 전국적으로 익히 알려진 스캔들이라면 지금의 인터넷 소문의 파장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식지 않은 부동산 투기는 당시에도 커다란 열풍을 가져왔다. 철도의 종착점과 종단항을 두고 경합한 세 군데, 그리고 결국 낙점된 나진에서의 엄청난 부동산 가격 폭등. 하루 아침에 백배, 천배로 뛰어오른 땅 값 앞에서 너무 놀라서, 또는 너무 실망해서 실성한 사람들이 속출했다고. 집을 팔고 나서 몇 달 후 집 값이 엄청나게 뛰어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화병, 우울증에 걸렸다는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와 겹쳐진다.
홀몸으로 억척스럽게 돈을 모으고 결국 사회를 위해 아낌없이 희사한 두 여성, 백선행과 최송설당의 이야기는 더욱 눈길을 끈다. 특히 육영사업가이자 시인이었던 송설당의 경우,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젊은 시절 도덕적이지 못한 사연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더욱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개 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고 했는데, 이들은 가족이 없는 여성이기에 정승의 삶을 택하기 쉬웠던 것일까.
부자가 3대를 가기는 어렵다더니, 3대는커녕 2대를 가기도 어려운 것 같고, 당대에도 부자에서 한순간 거지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부자가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인 경우, 그 양자가 부자로 살 확률은 적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흔히 부가 세습되는 사회라고 말하지만, 그 부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올바른 교육이 전제되어야 하는 법. 그리고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시대를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특별한 노블레스 오블리쥬가 소중하게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