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식인의 비평노트 조선 지식인 시리즈
고전연구회 사암.한정주.엄윤숙 쓰고엮음 / 포럼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동안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말하기 노트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고, 어떤 책들일까 참 궁금했다. 일단 시기와 주제 자체에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비평 노트가 출간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이 책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책을 살펴 본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아쉽다. 어떻게 이렇게 책을 만들었을까.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았고, 여러 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었다. 불학무식한 내 탓이 가장 크겠으나, 이 책에는 몰입하기 어려운 많은 요소들이 있다.

  먼저, 가장 거슬렸던 부분은 각 비평의 말미에 붙은 정체모를 ‘해설’. 머리말에 편자들은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느낀 소감을 짧게 기록했다’고 밝혔지만, 정말 글을 읽은 소감이 맞을까 의구심이 든다. 시중에 유행하는 잠언집의 어느 구절 같은 글귀를 어찌 조선 지식인의 비평문 뒤에 실을 생각을 했을까. 예컨대 장유가 자신의 문집에 자평한 글에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써놓았다. 자서에 겸양의 문구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글귀가 ‘소감’이라고? 비평문의 핵심과 어긋나는 ‘소감’은 책장을 넘기기 어렵게 한다. 

  경구와 잠언집 같은 소감은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책을 읽는데 가장 큰 방해요소가 된다. 이것 대신 의당 있어야 할 것은 비평문에 대한 ‘해제’이다. 지은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대해 비평한 글이며, 어떠한 맥락에서 쓰여진 글인지 간략하게 정리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전문가적 시각이되 일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하면서도 핵심을 잡을 수 있도록 서술되면 금상첨화다. 당연히 비평문이 쓰여진 시대도 밝혔어야 한다. 500년을 넘나들면서 ‘조선 지식인’으로 간단히 묶어버릴 수 있는가?    

  다음으로 아쉬운 점은 이 책의 구성과 체계다. 이 책에서 비평문을 제시한 순서는 시대순도 아니고, 주제별로 혹은 대상별로 묶은 것도 아니다. 예컨대 동일한 저자가 쓴 비평문이 여기 저기 에 배치되어 있고, 같은 대상에 대한 다른 사람의 비평문도 여기 저기에 배치되어 있다. 도무지 분류체계를 가지지 못한 채 조선시대의 비평문들이 그저 책 속에 열거되어 있을 뿐이다. 혹시 비평문을 분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지 못한 것은 아닌가.

  모든 글은 특정한 ‘맥락(context)’이 있다.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문자로 된 글만 보고는 그 글을 평가할 수 없다. 아니 평가 이전에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조차 알아내기가 어렵다. 번역된 글로 2쪽부터 5쪽에 이르는 짧은 글들이 토막토막 내 앞에 놓여있다. 나는 조선 지식인의 비평 노트를 마주하는 것이 불편하고 가슴이 아팠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 조상들의 멋진 글 솜씨에 그저 탄복하기만을 바랐던 것일까. 이러한 책이 우리의 과거와 우리의 오늘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닌지 안타까울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