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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평전
박호재.임낙평 지음 / 풀빛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1980년 5월의 광주는 내게는 너무나도 먼 곳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그곳에서 참혹한 학살의 시간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공공장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책과 필름 속에서 광주는 내게 충격적인 곳으로 각인되었다. 몇 년 전 문상 때문에 광주 땅을 처음 밟게 되었을 때, 금남로를 지나며 혼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그 기억과 무관하지 않을 터.
이제는 모두가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속에서 우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섭기만 한 군인들, 처참하게 도륙당하는 학생과 군중들,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들이 사실 내 기억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을 또렷이 알게 되었다. 그가 광주에서 무엇을 했는지, 그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무명씨’였던 광주가 갑자기 여러 명의 ‘윤상원’으로 내게 다가온 것이다.
해방 광주의 마지막 날, 계엄군의 도청 진압과정에서 총탄을 맞은 윤상원. 어렴풋하게 시민군에서 영웅적인 존재가 있었고, 어떤 여성과 영혼 결혼식을 올린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의 대변인으로, 시민군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자 회견을 열었던 사람이었기에 많은 이에게 기억되었다. 그 날 그를 목격한 미국의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젊은이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받았다. 그의 두 눈이 나를 향해 다가오자 나는 그 자신 스스로도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분명 그는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계엄군의 처참한 진압과 발포 후 광주 시민들은 벌떼 같이 일어나 계엄군을 일시적으로 몰아내고 도청을 점거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사실 잘 몰랐다. 도청 안에서 총기를 반납하고 투항하자는 의견에 맞서, 광주 시민들을 독려하고 시민군에게 결사항전을 권유했던 것이 윤상원, 그리고 그와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이었다. 결사항전. 이 말이 이처럼 가슴에 꽂히는 적이 또 있었던가. 끝까지 남은 이들은 정말 죽음을 맞이하였다. 거짓말처럼.
서른의 짧은 생애를 살았던 윤상원은 대학을 다니고 군대를 다녀올 때까지 소위 ‘의식화’된 사람은 아니었다. 대학에 복학한 늦은 나이에 비로소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행동으로 옮겼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현실과의 타협 속에서 잠시 서울에서 은행원 생활을 하였지만 다시 광주로 내려갔고, 들불야학의 강학(교사)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운동, 교육운동을 펼친다.
대학을 졸업한 장남에게 희망을 걸었던 부모가 있었고, 형을 위해 고등학교만 마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동생들이 있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괴롭지만 부모와 형제들을 잊도록 만들었는가. 그를 죽음으로 이끈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현재 교수, 장학사, 국회위원이 되어 있는 동지들도 있었다. 그날 죽음을 각오하지 않았더라면, 윤상원은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광주에는 수많은 윤상원이 있었다. 그 시대에는 어느 곳에나 수많은 윤상원이 있었다. 지금 그 정신은 남아 있는가. 어떤 모습으로 이어가야 하는가. 1980년과 비교하면 외형적으로는 지극히 평온한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광주는 다시 살아나서 내게 묻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