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 -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
이명희 지음 / 열림원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제목을 보고 멈칫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금기시 되는 욕. 단순히 ‘정신적으로 미친 여자’를 뜻하는 경우도 있지만, 흔히 ‘무섭고 독한 여자’를 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의 대상은 바로 후자이고, 이 시대를 사는 국내외의 무섭고 독한 여자 9명을 만난 인터뷰 책이다.

  이 책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거의 알고 있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사실 대부분은 이름조차도. 주로 예술 계통의 이 여성들은 저자의 소개로 처음 접하게 된 사람들이나 다름없다. 저자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만난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미국 사람이거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이 대부분. 그래서 낯설고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고, 나만 몰랐을지는 모르나 많이 알려지고 내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좀더 친근감이 들고 공감대가 형성되었을지 모르겠다.

  ‘미친년’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여성에게 씌워진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에 매진하고 일가를 이룰 정도라면 분명 독신이거나 이혼한 사람일 거라는 선입견은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인 사진작가 박영숙부터 깨졌다. 그녀도 말한다. 잘 나가는 마누라 때문에 남편이 잘 안되는 거라는 주위의 비아냥. 반대의 경우 그런 말은 없을 텐데 여성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손가락질 받는 극명한 표지라고 느껴졌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기억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성공한 ceo 김태연은 6남 3녀의 자녀를 두었다. 모두 외국인으로 입양한 자녀들. 그녀에게 어찌 모성이 없다고 할 수 있으랴. ‘열심히 일하면서 착하고 괜찮은’ 아시아 여성의 틀을 깨고 싶었던 예술가 윤진미는 ‘일’을 선택했고, 아이들이 자신의 선택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말한다. 엄마의 야망이 아닌, 아이들의 열망과 야망을 찾아서 아이들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말도 오늘날의 어머니 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일과 가족 사이에서 어느 하나도 제대로 부여잡지 못하고 어정대는 모습, 그래서 일을 선택했을 때 들을 ‘미친년’ 소리에 대한 불안감. 일이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번번이 아이들 앞에서 스스로 굴복하는 이중적인 모습.


 이 책은 어느 부분을 펴도 읽어나갈 수가 있다. 그녀가 누구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설득력 있는 그녀들의 목소리와, 이를 조직화하는 저자의 솜씨도 훌륭하다. 단 페미니즘적 시각에 주로 집중되었고, 예술 분야의 인물이 많은 관계로 조직 생활에서 ‘미친년’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잘 듣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사실 일을 하는 많은 여성들이 주로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고, 현실적인 조언도 어느 정도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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