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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풀스 데이 - 상 - 데이먼 코트니는 만우절에 떠났다
브라이스 코트니 지음, 안정희.이정혜 옮김 / 섬돌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만약 [에이프릴 풀스 데이]가 완전한 픽션이었다면 병마와 맞서 싸우는 주인공과 그를 사랑했던 여인과 가족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것이 이 책이 가진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 브라이스 코트니가(아쉽게도 내가 그의 책을 읽은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의 막내 아들 데이먼을 위해, 데이먼을 대신하여 쓴 회고록이라는 데에서 이 책은 더 크고 깊은 울림을 갖고 있다.
병명이 무엇이든 아픈 사람을 보거나 겪는 일은 힘든 일이고, 그 아픈 사람이 가족이거나 친척이거나 친구라면 더욱 그렇다. 하물며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그 작고 귀여운 내 아기가 이미 난치병을 갖고 있다면 더 말하여 무엇할 것인가. 데이먼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혈우병을 갖고 있었고, 생후 몇 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체내 출혈로 인해 머리가 세 배나 커진, 그래서 눈과 코와 입과 귀가 단추 구멍처럼 얇고 길게 쭉 늘어나버린 그 모습을 보았을 아빠의 심정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것이며 설명한다 해도 얼마만큼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잘못된 피의 수혈로 에이즈를 얻고, 에이즈가 마치 야금야금 케揚?잘라먹듯 데이먼을 조금씩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는 부모와 형제와 연인의 심정은 어떠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먼의 아빠, 즉 저자는 아들의 병든 모습이나 아들이 아파하는 순간을 묘사하는 데에 상당한 절제력을 보인다. 차라리 아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가족의 비통함을 절절히 그려냄으로서 비극을 더욱 비극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어쩌다 그 절절함을 표현하는 대목을 만날 때면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새어나온 깊은 절망의 소리를 엿듣는 것 같다.
반면 저자는 아들의 병을 더 빠르게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죽음을 더 앞당기게 만든 호주의 의료시스템(히포크라테스 선언문을 기억하지 못했을 망할 놈의 몇몇 의사를 포함해)과 관계 당국, 정부를 호되게 비난한다. 사실 책에 씌여있는 대로라면 데이먼은 진찰을 받거나 처치를 받을 때 중요한 실험/관찰 대상이 되기도 했고, 오진과 오판으로 치명적인 상해를 입었고, 그러고도 아무런 변명이나 사죄를 받기는 커녕 사실 인정조차 받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책을 읽는 나 또한 화가 끓어오를 정도였으니, 그의 분노와 비난은 너무도 당연하고 합당하다.
한 편으로는 신의 저주라고 불리는 에이즈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편견을 나무라면서 에이즈 환자 역시 사랑과 보호 속에서 생을 지켜가고 마감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이것은 내게 다소 충격적이었는데, 데이먼이 잘못된 피를 수혈받아 에이즈에 걸렸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이 억울했다고 하면 오히려 이해하기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저자와 데이먼은 잘못된 피의 수혈 때문이든 동성애 때문이든 에이즈는 치료할 수 없는(현재로서는) 병일 뿐이고, 에이즈를 뿌리 뽑기 위한 관심과 기금과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데이먼이 에이즈로 입원하고 있을 당시 그를 찾아온 어느 기독교 신도에게 하느님이 동성애자에게 벌을 내렸다면 근친상간이나 원조교제(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를 한 자들에 대해선 어떠냐고 질문했던 것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데이먼의 생각지도 못한 질문 자체도 그렇지만 데이먼의 생각-에이즈는 더럽거나 수치스러운 병이 아니며, 따라서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따뜻하게 간호받고 가족의 사랑과 보호 속에 있어야 한다는!-에 한 방 맞은 느낌이다.
[에이프릴 풀스 데이]를 소설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분명 재미있다. 대부분은 데이먼의 아빠인 저자가 글을 썼고, 중간 중간 그의 엄마와 연인의 글이 있고, 데이먼이 직접 쓴 글도 들어있어서 2권짜리 소설이 지루하지 않다. 또 어렸을 때부터 참을성 많고 사려 깊고 긍정적이며 다른 사람을 끄는 매력이 넘쳤던 '위대한 데이먼'이 병이 깊어지면서 조금씩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가엾은 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읽는 사람의 마음과 눈시울을 적시고도 남는다. 그의 가족의 사랑과, 더할 수 없는 완벽한 사랑으로 끝까지 데이먼을 놓지 않았던 연인과의 사랑 역시 감동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이 실제였기 때문에 더욱 가슴에 사무치는 이야기이고, 더 큰 울림을 남기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