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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 아니야, 책임에 대하여 ㅣ 모두가 친구 4
레이프 크리스티안손 지음, 딕 스텐베리 그림, 김상열 옮김 / 고래이야기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몰라.
그 애들은 여럿이었는데 난 혼자였거든.
다른 애들이 먼저 그 애를 때렸어.
그 앤 이상해. 정말 짜증나는 아이야.
때리긴 했지만, 그냥 별 뜻 없었어. 모두가 때렸거든.
그러니까 내 탓이 아니야.
열 네 명의 아이들이 한 명씩 나와서 이야기한다. 그 앞에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한 아이가 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아이는 없지만, 모두들 입을 모아 내 탓이 아니라고 한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한 아이를 때렸구나. 정황상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다.
펜으로 그려진 단순한 그림과 역시 단순한 스토리에 약간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번갈아 내뱉는 말을 소리내어 읽을수록 속상하고 화가 난다. 잘 몰랐다고, 여럿이 그랬다고, 다른 아이가 먼저 그랬다고, 이상하고 짜증난다고 내 탓이 아니라니! 간혹 그 일의 시작을 잘 알고 있었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그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기에, 이 모든 일의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책을 다시 읽어본다.
그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애들은 여럿이었지만,
다른 애들이 먼저 그 애를 때렸지만,
그 앤 이상하고 정말 짜증나지만,
별 뜻 없었고, 모두가 때렸지만,
진심으로 미안해.
책의 힘이란 이런 걸까. 호기심으로 함께 책을 보던 아이는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충격적인 흑백 사진들을 보며 엄청난 관심을 갖는다.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 사진 앞에서 갑자기 ‘나는 안 그랬어’라고 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강에 일부러 폐수를 흘려보내는 공장 업주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겠지만, 세제를 많이 쓰는 우리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쉬운 점이라면, 책의 내용은 학교 폭력과 왕따에 관한 책임의 소재인데 제시하는 사진들은 전쟁, 기아, 환경 파괴 등 사회적인 이슈의 거대한 문제들이라는 점. 책의 내용과 밀접한 소재, 즉 학교폭력과 왕따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우를 암시하는 사진으로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러나 사진 자체로도 큰 효과가 있었으니, 우리 아이에게 영양실조에 걸린 아프리카 소년의 충격적인 모습이 내내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