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아이들과 함께 미술관에 나들이하면서 하나둘씩 아는 이름과 그림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무엇보다 미술에 관한 관심이 싹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유명한 화가의 이름과 작품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그것도 깊숙이 들어가면 아는 것이 없는 그런 상태에서, 이제 그림이 부분적으로 자세히 보이고 전체 미술사에서 어디쯤 위치하는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아직은 미술 감상에 있어서 초보 단계에 다름없는 나에게 이 책은 역사화라는 낯선 분야를 접해주었다.‘역사화’라는 이름에서 역사적 사실에 관한 소재를 다룬 그림일 것이라고 유추하였으나 저자의 설명은 달랐다. 오늘날과 같은 엄격한 역사 관념을 가지지 않았던 과거의 화가들은 ‘역사를 그린 그림’이라기보다는 ‘이야기를 그린 그림’을 그렸다는 것.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하는 역사화의 대부분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화나 종교, 특히 기독교에 관한 그림이다.
역사화가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은 르네상스 때부터이고, 일반인들이 역사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미술에 있어서 역사라는 소재는 다소 늦게 주목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역사학의 발전이 뒤따라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 책의 구성은 역사화의 분류를 종교, 신화, 역사로 하여 그 아래 신과 인간, 사랑과 갈등,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 전쟁, 전설 등으로 세부 분류하여 대표적인 그림과 해설을 나란히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침몰]이었는데, 두달 전에 루브르박물관전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제목을 보면서 역시 그 전시회 때 보았던 작품이 아닐까 추측했는데 책에 소개된 작품은 동명의 다른 작품이었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같은 제목의 다른 그림을 비교하면서 서로의 느낌과 신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오히려 수확이었다.
이 책에서 다룬 역사화를 보면서 그림 외에도 서양의 신화와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수확이다. 같은 소재나 주제에 대한 다른 작품을 하나씩 더 보는 것도 재미. 기왕이면 역사적 순서로 역사화를 제시하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예컨대 [폼페이 최후의 날]과 [아테네 학당]은 배경이 각각 로마와 그리스라는 점에서 순서가 다시 조정되면 역사의 흐름을 알기에 유익했을 듯 하다. 그리고 모두 서양화만 수록되어 동양에서 그려진 역사화가 전무하다는 점도 아쉬운 점이었다. 그러나 역사화라는 낯선 장르를 친근하게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웠고, 같은 저자가 쓴 어린이 눈높이의 미술서가 이 책 외에도 풍경화와 인물화를 다룬 책이 더 있다 하여 찾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