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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눈으로 ㅣ 이야기 보물창고 4
패트리샤 매클라클랜 지음, 신형건 옮김, 데버러 코건 레이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시각 장애인인 할아버지는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시는 걸까. 할아버지는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면서 잠에서 깨어나, 수돗물 소리를 들으며 할머니가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며 아침 메뉴가 무엇인지를 아신다. 풀잎이 스치고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느낌으로 산들 바람이 남쪽에서 불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오돌토돌한 점자를 더듬어 책을 읽으신다. 그것이 ‘캐나다 기러기’라는 것은 정확히 모르지만, 한 무리의 기러기 떼가 하늘을 날고 있음을 귀를 통해 알고 계신다.
내게는 시각 장애인 친구가 있다. 함께 공부한 인연으로 알게 된 그는 십대 중반에 병을 앓다가 실명을 하였는데, 30년 가까이 시각 장애인으로 살면서 맹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를 알기 전에는 사실 나도 시각 장애인의 삶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그를 통해 시각 장애인과 함께 길을 걸을 때는 손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한쪽 팔을 잡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시각 장애인도 TV와 영화, 연극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소리로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에게 물었다. 외국에서는 시각을 되찾는 수술 기법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데 앞으로 수술을 받을 의향이 있느냐고. 그의 대답은 뜻밖에도 ‘아니오’. 이제는 시각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내 몸의 일부처럼 편하다고 했다. 그에게 사소한 불편함이 왜 없겠냐마는, 이제는 자연스러움과 당당함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며 시각 장애인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고, 장애가 불편하다기 보다는 또 다른 생활 방식임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이 책의 화자인 손자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게 다가왔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잘 자라며 전등을 끈다는 것이 잘못하여 전등을 켜고 말았다. 아이는 전등을 다시 끄는 대신 할아버지가 방을 나갈 때까지 조용히 누워 있다. 여러 상황의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데 있어서 조그만 ‘배려’는 좀더 살맛나는 사회를 만드는데 중요한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