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비행기를 탄다면 온두라스에서 미국까지 네다섯시간 정도면 족히 갈 수 있으리라. 그러나 엔리케에게는 무려 122일이 걸렸고 심각한 죽음의 위험에 직면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과연 지금 현재 벌어지는 실화인지 내내 궁금했고, 자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다섯 살의 소년 엔리케가 경험하는 온두라스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밀입국의 여정. 그 길은 '험난한' 정도의 수식어로는 부족한, 너무나도 끔찍하고 놀랍고 비참한 여정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왜 그 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일까.


 중남미의 가난한 나라에서 부양할 아이들을 가진 싱글맘의 선택은 하나다.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열심히 일하여 내 아이를 잘 먹이고 학교를 보내어 번듯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하루종일 일해도 아이들을 한끼조차 먹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젊은 엄마들은 단신으로 미국에 들어간다. 잠깐만, 몇년만, 오년만...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단행한 생이별은 십년을 훌쩍 넘기게 되고, 엄마와 아이들의 만남은 점점 멀고 먼 이야기가 되고 만다.

 

 만리타국에서 엄마가 보내오는 돈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학교를 그만두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 그러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결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많은 소년들은 엄마를 찾아 떠나고, 멕시코 행 화물열차에 몰래 올라타 미국으로, 미국으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목숨을 버리는 일은 부지기수. 또한 '이주민' (멕시코 인들은 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에 대한 냉대와 폭행, 절도, 강간 그리고 살해 위협에 맞닥뜨리고 되고, 불행히도 희생자는 속출한다.

 

 미국으로 가는 길, 엔리케는 수없이 잡혀 왔고, 그 때마다 다시 시도했으며, 결국 강을 건너 엄마를 만난다. 그에게는 단지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어렵게 만난 엄마와 아들. 이제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충만하고, 함께 힘을 모아 남은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는 큰 돈을 마련할 수 있는 황금빛 미래가 과연 펼쳐지게 될까?


 엔리케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마를 만난 후에도 계속되는 엔리케의 방황과 기회의 땅 미국에서 엄마와 똑같이 힘겨운 삶을 살게 되는 그의 하루하루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그의 여정을 발견할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엔리케가 남기고 온 여자 친구 마리아와 딸 자스민의 삶은 반복되는 운명의 굴레를 절망스러운 모습으로 보여준다. 온두라스에 남았던 마리아는 자스민을 인간답게 키우기 위해 미국 행을 결심하고, 엔리케가 그렇게도 벗어나고자 했던 외로웠던 어린 시절은 자신의 딸에게 다시 대물림되는 것이다. 제 2의 엔리케는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이 또한 엔리케의 여정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에게 데이트를 청하는 백인 남자에 응했더라면 자신과 아이들의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엔리케 엄마의 한탄에 왜 그리도 공감이 되던지. 엔리케도 본국에 남겨둔 아내와 자식이 없었다면 좀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어떤 상황을 가정해 보더라도 그들에게는 바늘 구멍만한 기회가 있을 뿐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찌 해볼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너무나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 험한 여정에서 귀하게 만났던 따뜻한 손길들을 떠올리며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흥미롭게 읽어가면서 들었던 수많은 잡념들. 안전한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왜 위험하게 기차를 잡아 탔는가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는 마리 앙뜨와네트와 같은 사람으로 손가락질 당하려나. 주인공 엔리케의 이름에서 15세기 포르투갈의 항해왕으로 일컬어지는 '엔리케 왕자'가 떠올랐으니 이건 또 무슨. 우리 땅에서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엔리케 부모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한편, 우리에게 미국이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 가는 나라가 아니라 공부시킨다고 돈을 '쓰러' 가는 나라가 된 상황이 묘하게 겹쳐진다. 이민 정책에 대해 저자가 길게 설명하고 제안하는 뒷부분도 우리에게 시사점이 있을 듯하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접하게 된 현대판 '엄마찾아 삼만리'의 현장은 결코 낭만적이거나 아름답지 못했다. 나와 같이 낯선 이야기를 만나 당황스럽고 놀랄 수 밖에 없겠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참혹한 현장을 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의미에서 청소년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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