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제국 - 개정판
이인화 지음 / 세계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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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제국]과 작가 이인화의 이름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조 독살설'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박정희를 찬양하는 논조라고 비판받기도 했고, 교수가 된 작가가 요즘에는 디지털 세계와 게임에 관한 글을 신문에 종종 게재한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유명한 작품을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 

  읽어보지 않았다면 참으로 아쉬웠을 것 같다, 책장을 마지막으로 덮으면서 든 생각이었다. 최근에 라디오에서도 광고를 하고 있는 세종 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추리소설보다 훨씬 나았다. 이 책이 나온지가 10년이 넘었고, 작가의 나이 스물일곱살이었다고... 책 속에 담겨있는 역사적 사실들과 유학에 대한 지식, 이기론과 붕당을 왕권과 연결하는 설명력은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다. 스토리 구조 또한 엉성하지 않았고 수많은 등장인물들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책을 읽는 속도를 방해하지 않았다. 

  일본의 동양문고에서 정조 대 규장각 대교였던 이인몽이 쓴 정체불명의 기록인 '취성록'을 발견하는 화자. 몇가지 의문점 때문에 학위 논문에 실을 수 없었고 따라서 소설 형식을 빌어 쓴다고 도입부에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소설 속에서도 취성록에 주석을 다는 듯이 서술하는 방식은 또 한번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의 내용을 허구가 아닌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호소력을 갖췄다. 

  규장각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을 기점으로 하루 동안 일어난 이야기가 과거의 회상을 포함하여 전개된다. 역사 속에 실존했던 정약용과 채제공, 그리고 정조 임금 등 여러 인물들로 인해 분명히 소설임을 알면서도 자꾸만 실재했던 어느 곳으로 끌려들어 가는 느낌이 든다. 정조 독살설을 모티브로 했으나 정조의 독살 자체는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 개연성이 있을만한 이전의 사건이 주축이 된다. 박정희 유신의 미화 논쟁은 작가 스스로 정조가 꿈꾼 유신은 박정희 유신과 달랐다고 책 속에서 설명하고 있으니 작가의 작품 이후의 행보와는 일단 구별지어도 될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가 이루려 했던 강력한 왕권 중심 국가에 향수를 보이는 작가의 태도는 유신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로 비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또한 진보와 대립되는 ‘보수’ 지향적인 성격은 어쩔 수 없이 배어나고 있다.      

 주인공 이인몽의 이름에서도 떠올릴 수 있듯이 겨울밤 꿈을 꾼 듯한 기분이 너무도 선명하다. 수많은 실학자를 키워냈던 정조 임금이 후세 많은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보수적이었으며 과거 회귀적이었던 인물이었다고 알고 있다. 또한 정조 사후 전개된 파행적인 세도정치가 실은 정조 시대의 업보였다는 평가도 들은 바 있다. 무엇이 진실이었는가를 따지기 전에, 소설로 만나는 정조 시대는 그저 가슴이 울컥해지고 아득히 꿈결 같다는 느낌만 스멀스멀 올라온다. 

* 덧붙임. 궁궐의 화재 기록들을 설명하면서 일제 강점기까지 포함하여 '다이쇼(大正)'이라는 연호를 쓴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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