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죽은 친구의 일기를 건네 받게 된 열두살 소녀 마사. 몇달 전 전학을 왔고 따돌림을 받았다는 기억 밖에 없는 그 친구는 일기장에 마사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고 마사가 반에서 가장 좋은 아이라고 썼다. 책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이 에피소드는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어가는 출발점이 된다.
죽은 친구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가지게 된 마사는 곧 가족과 함께 할머니 댁에 며칠간 지내러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마사에게 벌어지는 일들. 잔잔한 일상과 같은 일들이었지만, 독자로 하여금 열두살 마사가 되어보는 경험을 하게 한다.
마사가 할머니에게 고백한 첫번째 비밀은 "전 우리 가족이 다 싫어요" 이다. 돌이켜보면 가족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던 때가 누구나 한번쯤은 있지 않았을까? 또 상당히 오랫동안 그 감정이 지속되기도 했을 것. "애증"이라 표현되는 가장 대표적인 관계가 가족이 아니던가. 한살 위의 오빠에게 죽은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말까 주저하는 마사를 보면서, 이제 말이 통하지 않기 시작한 사춘기 이성 형제의 캐릭터가 크게 공감되었다.
작가가 되려고 일을 포기하였으나 결국 작가를 포기하기로 마음 먹은 아빠, 사회 생활과 셋째 아이를 보는 일에 항상 지쳐있는 엄마, 이제 말 상대도 게임 상대도 되어 주지 않는 오빠, 자기 말만 하는 어린 동생... 아무하고도 진정한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되지 않는 마사에게 가족은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뿐이다. 두드러진 큰 문제는 없지만 모두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 가족을 발견하는 어린 아이에게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매우 힘겹게 느껴질 것이다.
이 책에는 또 다른 중요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마사의 첫사랑과 배신에 관한 이야기다. 충격적인 반전이나 극적인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옮긴이의 말과는 달리, 이 에피소드는 매우 충격적이라고 생각되었다. 결국 산산조각이 난 마사의 첫사랑은 안타깝게 느껴졌고, 반대로 그일이 뒷수습되는 과정은 뿌듯하게 보였다. 열두살 때 나도 짝사랑하던 누군가가 있었던가?
이 책은 때로 문화적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68개로 잘게 나뉘어져서 그런지 호흡이 짧게 느껴졌고 매우 빠르게 아주 재미있게 읽혔다. 특히 "저 집에 왔어요!"라고 말하고 끝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영원한 애증의 대상인 가족, 그러나 결국 나의 뿌리는 바로 가족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