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열 가지 그림으로 읽는 성리학 청소년 철학창고 3
이황 지음, 최영갑 풀어씀 / 풀빛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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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聖學)을 열 가지 그림(十圖)로 풀어낸 책, 이황의 [성학십도]를 만났다. 이름만 알고 있던 성학십도의 배경과 내용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글로 풀어가는 대부분의 유학 서적과는 달리, 그림으로 성리학을 풀었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다.

   68세의 노학자 이황이 17세의 선조 임금에게 올린 책으로, 임금을 성왕(聖王)으로 이끌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한다. 아무리 명망높은 대학자라 할지라도 훌륭한 군주가 되라는 충고를 담은 이러한 책을 감히 신하가 왕에게 올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유학의 기본 전제를 이해한다면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라는 것은 불특정 다수를 의미하므로 자연스럽게 군왕이 포함될 수 있었고, '노력하면'이라는 요건에서 끊임없는 교육과 학습이 요구되었다. 바로 이 점이 유교 사회의 기본적인 특징이었고, 조선은 그러한 원칙에 가장 충실했던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성학십도]를 구성하는 열 가지 그림은 태극도, 서명도, 소학도, 대학도, 백록동규도, 심통성정도, 인설도, 심학도, 경재잠도, 숙흥야매잠도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예전부터 전해오던 그림을 그대로 실었거나 좀더 보충하였고, 소학도와 백록동규도, 숙흥야매잠도 등 세 가지는 이황이 직접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주돈이의 태극도 외에는 접한 적이 없기 때문에, 과거의 유학자들이 유학의 체계를 글이 아닌 그림으로 종종 설명했었다는 점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림을 그린 것일까?

  오늘날의 눈으로 들여다보니 태극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림'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도표'로 보인다.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의 요체를 적고, 그 관계를 선으로 연결하거나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제시함으로써 체계적인 요점 정리의 인상을 받았다. 오늘날 같으면 프리젠테이션의 발표 내용이 연상되었다. 성학의 요건들을 핵심적으로 파악하게 하는 일종의 관계망으로 생각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태극도]와 [서명도]. 태극도는 우주의 근원과 만물의 생성 원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근사록의 첫머리도 태극도설로 시작된다. 서명도는 이일분수(理一分殊)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만물이 하나의 원리에서 나와(이일) 각각의 사물들로 나뉘는 것(분수)을 뜻한다. 이 두가지는 성리학의 기본 개념들로써 이로부터 성리학이 출발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소학도]와 [대학도]. 소학과 대학의 주요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고, 8세부터 배우는 소학과 15세부터 배우는 대학을 중요하게 취급함으로써 성리학자들이 생각한 '공부'의 순서를 알 수 있게 한다. 퇴계는 소학과 대학의 효과로서 다음 여섯 장의 그림이 나온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통 교육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백록동규도]와 [심학도], [숙흥야매잠도]가 인상적이었다. 백록동규도는 주자가 백록동서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규범의 목차를 퇴계가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퇴계가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의 사액을 상소했던 점을 떠올리면, 백록동규도를 손수 그렸고 소학, 대학 공부의 효과로 첫번째에 배치한 뜻이 이해가 될만하다. 내용은 삼강오륜과 중용에 제시된 학문하는 순서로 되어 있다. 성균관과 향교의 학당을 명륜당으로 부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교육에 있어 '명인륜(明人倫)'은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또한 이치를 연구하고(궁리)와 이를 실천할 것(행)을 강조한 것은 성리학의 교육 방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심학도]는 정복심의 글과 그림으로, 심(心)과 경(敬)의 내용과 양자 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공부를 타고난 것을 보존하는 공부(계구)와 욕심을 막는 공부(신독)로 나누고 이 둘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공부의 요체는 오로지 경이다. [숙흥야매잠도]는 진백의 그림에 퇴계가 그림을 그린 것으로, 숙흥야매(夙興夜寐)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 잠을 잔다는 뜻이다. 일곱 항목으로 나누어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에 따른 공부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역시 경(敬) 자가 놓여 있다. 이러한 후반부의 내용들을 통해서 퇴계가 집대성한 '경(敬)' 사상을 성학십도에서 또 한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성학십도를 직접 원문으로 보았다면 이러한 것들을 쉽게 알 수 있었을까. 이 책에서 그림으로 그려진 원본과 그것을 다시 활자로 그린 것을 대조하면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원본의 해석과 이를 풀이하여 저자가 설명한 부분도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 성인이 되기 위한 성학(聖學)은 당대에는 곧 성리학(性理學)이라 할 수 있다. 퇴계가 정리한 성학, 즉 성리학의 요체를 한 눈으로 일목요연하게 만날 수 있었고, 여기에서 가지를 치는 여러 가지 공부할 꺼리들을 받아 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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