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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마음으로 읽는 다산 정신 ㅣ 청소년 철학창고 7
정약용 지음, 장승희 풀어씀 / 풀빛 / 2005년 11월
평점 :
* 임명된 직후에 재물을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
* 뇌물을 주고 받는 일을 누가 몰래 하지 않겠냐마는, 밤중에 한일도 아침이면 드러난다.
* 법으로 금지한 것과 형법에 실린 것은 매우 두려워해야 하며, 감히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폐해가 없는 법은 잘 지켜 바꾸지 말고, 합리적인 관례는 지켜서 없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 감사는 법을 집행하는 관리니, 감사와 오랜 친분이 있다 해도 그것을 믿고 의지해서는 안된다.
위와 같은 글귀가 어느 공무원의 사무실에 적혀있는 것을 본다고 가정해보자. 이상하거나 부자연스럽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에 썼던 말들은 바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정치인와 행정가들로부터 추천할만한 책으로 단골로 꼽히고, 베트남의 호지민이 열심히 읽었다는 책, 목민심서. 한 때 나도 원문 번역본으로 부분적이나마 읽어보았던 적이 있으나 사실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번에 풀빛에서 청소년을 위해 쉽게 풀어쓴 목민심서를 보면서 다시 한번 무릎을 쳐가면서 재미있게 읽어내려갔다.
다산은 맹자가 가축을 기르는 것을 목민(牧民)에 비유한 것에 따라 백성들을 보호하는 지방관을 목민관이라 하고,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자신이 몸소 실행할 수 없기에 심서(心書)라 이름 붙인 책을 썼다. 그 내용은 목민관의 부임 길(부임), 목민관의 자기 수양(율기), 법과 도리에 기초한 공무 처리(봉공), 목민관의 백성 사랑(애민), 지방 행정의 실무(이·호·예·병·형·공전), 흉년의 백성 구제(진황), 물러나는 길(해관) 등으로 구성하였다.
목민심서는 지방관이 애민 정신에 입각하여 지방행정의 정도(正道)를 걷도록 도움을 주는 지침서이다. 다산이 "다른 벼슬은 구해도 목민관만은 구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처럼, 수령으로 총칭되는 지방관의 자리는 백성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러나 조선 전기부터 경관보다 외직은 양반들에게 외면을 받았고, 조선 후기에 이르면 대과에 급제한 문신보다 무과 출신의 무신이나 음직(음서)으로 관직에 들어선 자들이 주로 외관으로 부임하였다. 필연적으로 수령의 자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지방행정의 기강도 더욱 흐트러질 수 밖에 없었다.
지방관으로 임명되는 그 순간부터 부임지에 도착하여 그 임무를 마칠 때까지 지방관으로서의 정도를 걷는데 도움이 되는 아주 상세한 지침들을 다산은 이 책, 목민심서에서 제시하고 있다. 큰 지침의 성격에서부터 "도장의 글자는 흐리거나 닳지 않아야 하며, 화압(서명)은 조잡해서는 안된다"는 아주 구체적인 조언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지침들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수령의 청렴에 대한 강조는 매우 강한 어조로 자주 언급하고 있다. "개인이 쓰는 비용을 절약하는 것은 보통 사람도 할 수 있지만, 관청 창고의 재정을 절약하는 이는 드물다. 공공물건을 개인 물건처럼 아껴야 현명한 수령이다"라는 지적은 매우 설득력이 있고, 또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의미있는 조언이라고 생각된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금전적인 문제와 관련되는 경우가 가장 많지 않은가. 이에 못지않게 빈번한 것이 도덕성 문제. 이에 대해서는 '수령의 자기 수양' 편을 참고할만하다.
수령이 해야 할 일 중에 노인을 잘 모시는 양로, 어린이를 보살피는 자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진궁, 상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애상, 병자를 돌보는 관질, 이재민을 구하는 구재에 관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주례의 관련 내용을 다듬어 제시했다고 하는데, 오늘날의 복지 행정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이가 차도록 혼인하지 못한 사람을 혼인시켜야 한다는 조목을 보면, 수령의 역할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야 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청소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구성이 돋보인다. 재용이라는 소년과 다산 선생이 서로 대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이해를 도와준다. 전체적으로 목민심서의 체제를 따라가면서도 주요 내용들은 파란색으로 돋보이게 제시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대화체로 보충해주는 형식이다. 형태만 대화체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대화하듯이 편안하게 쉽게 설명되어 만족스럽다. 아쉬운 점은 이·호·예·병·형·공전이 어렵고 전문적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목차만 언급하고 넘어간 것. 이 부분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생략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자세하게 혹은 부분적으로 주요 내용만이라도 소개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수령은 자신이 관할하는 마을에 있어서 왕과 같은 존재였다 한다. 이것을 백성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로서 이해하느냐, 백성의 삶을 보살펴주고 책임지는 자로서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았으리라. 다산의 충고는 200년이 흐른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반대로 200년전의 상황을 이해하고 복원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