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는 대사가 유행한 적이 있었지요.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 상대방도 기꺼이 용서해 주는 장면들이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깊은 믿음, 상대방이 나의 미안한 마음을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요.
“고해성사”의 특징이 거기에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 죄를 지었지만, 잘못했다고,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려서 죄송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죄 짓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드리며 용서를 청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비롭게 용서해 주시는 과정이 고해성사이지요.
그러나 많은 경우, 고해성사는 어렵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참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가만히 반성을 하다 보면 왜 나만 잘못했다고 해야 하는가?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데 왜 나는 슬퍼해야 하는가? 세상에 죄짓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작은 잘못은 죄도 아닐 거야 등등.. 이런 저런 마음이 올라오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게 되지요.
참된 회개를 위해서는 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살인이나 사기, 도둑질 같이 사회적으로도 큰 벌을 받는 죄들도 있고, 자신과 하느님만이 아는 작은 잘못들도 있습니다. 실은 이런 작은 잘못들은 회개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마음에 꺼림칙함을 약간 남기고 금방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죄를 짓는 것일까요? “새 마음을 주리라”의 저자 스콧 한은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는 악한 것을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덜 좋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더 나은 선, 즉 하느님의 뜻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덜 선한 것, 인간적 욕망을 충족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죄라는 것이지요.
고해성사의 은총과, 고해성사에 앞서 꼭 필요한 참된 회개에 관해서 무겁지 않게, 그러나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는 “참회란 하느님의 사랑을 방해하거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를 기꺼이 제거하는 것이다. 참회란 매순간 하느님께 우리의 온 존재를 봉헌하는 삶의 출발점이다.” 라고 말하며, 참회의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회 행위로 진정으로 필요한 새 마음을 얻는다. 고해성사는 일상생활 속의 참회 능력을 축복하고 완성하며 확대시킨다. 고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어느 기도의 마지막 구절처럼 말이다. “당신의 선한 행위들과 참아 받는 고난으로써 당신의 죄가 치유되고, 거룩함 안에서 성장할 힘을 얻으며, 영원한 생명을 보상받기를 빕니다.”
참회 행위를 통해 참회의 미덕 안에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친절, 용기, 성실함에서 비롯된 수많은 작은 행위를 반복, 실천함으로써 인자함과 용기와 근면성실함의 미덕 안에서 성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와 같이 노력한다면 참회의 미덕은 일상생활 속에서 고해성사를 위한 자연적이고 초자연적 습성이 된다. ... 참회의 미덕을 갖춘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할 마음 자세가 되어 있다. 그 희생이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행위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편의나 즐거움이나 위안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참회 행위는 너무도 평범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한테는 행복이다.
문득 저의 생활을 반성해 보았습니다. 저는 저렇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작고 평범한 참회 행위로 저의 하루하루를 채워 가고 있는지. 그것이 저에게 행복인지. 저도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희망을 주는 구절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뿐 아니라 모든 죄에 대항해야 한다. 맞서야 할 악이 너무나 많다. 사실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은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사람이 육신을 지니고 사는 한 어느 정도 가벼운 죄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가볍다고 말하는 이 죄를 가벼이 여기지 말기를... . 가벼운 죄가 모여 거대한 죄를 낳는다.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고 여러 결정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희망은 있는가? 그렇다. 그리고 그중 고백이 으뜸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에 힘을 얻으며, 고해성사를 통해 저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저의 매일을 작은 선행으로 채워 나가겠다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