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전집 50% 할인, 탐난다 탐나!


검색해보니 박완서 전집이 두 군데 나왔다. 문학동네와 세계사출판사다. 그동안 박완서의 책을 한 권씩 사서 모았다. 읽은 책이 열권이 넘는다. 솔직담백하고 진솔하고 다부진 글이 절로 감동이 된다. 그런데 이번에 세계사에서 전집을 출간 해 50% 세일을 한다. 글쎄 다른 출판사에서도 나온 책이 모두 합해진 것인지 나로서는 알길이 없다. 다만 50%라는 미끼가 너무 크게 다가온다. 빚이라도 내어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누가 보태둘 사람 없나. 


언제부터 박완서의 글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기억도 없다. 어느 순간 그녀의 글의 좋아졌고, 읽어 갔다. 그러다 그녀의 죽음 소식을 듣고 마음 속에서 '쿵'하고 소리가 났다. 이제 더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구나. 더이상 박완서의 글을 읽을수가 없구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냥 이름만 붙이기에 송구하다. 박완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러나 아직 나에게는 그런 친분이 없기에 그냥 작가 박완서가 편하다. 


지금껏 읽은 노트에 보면 박완서의 명문장들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가장 기억이 남는 문장은...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그립다.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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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심리학을 읽다


생물 심리학을 읽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간에 대한 오해가 일어날  소지가 많다. 어쩌면 인간은 단지 화학반응으로만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때론 세포 하나하나 분석해 들어가면 인간이란 뭔가 의구심이 일어난다. 먹고 싶은 건 단지 에너지를 채우기 위한 뇌가 내린 호르몬 작용에 불과할까. 


올초에 재미있게 일었던 뇌과학에 관련된 책들은 뇌를 적당하게 훈련시키고, 길들이면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습관도 뉴런의 작용이고, 시냅스가 활성화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복적인 습관에 뇌는 길들여져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한다. 예를들어보자. 아침에 일어나 곧바로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보자.


첫날은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책상을 찾아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이튿날 역시 첫날과 다르지 않다. 삼일째는 조금 더 쉬워진다. 대개 3일 고비라고 하는데, 3일만 잘 넘기면 탄력이 붙는다. 일주일 이주일 삼주가 흐르면 거의 고착화 된다. 그러나 대개 66일 정도가 되어야 체화되어 완전한 습관이 된다. 그러면 일어나 책상에 앉는 것이 더 쉬워 진다. 


몸의 반응은 뉴런이 한 곳-일어난 책상에 앉는 것에 익숙해져 쉽게 반응한다. 길이 나지 않는 곳을 걸을 때 걷기 힘들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주 그곳을 다니면 길이 난다. 도로가 잘 구비되어 있다면 다니기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다. 뉴런도 동일하다. 사람은 익숙해지면 재미가 없어지만 다른 것을 추구하고자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익숙함은 재미의 반감도 일어 나지만 탁월함을 의미하기도 하다. 이것이 타인의 존경과 부러움을 사게 되면 일 자체의 즐거움보다 타인에게서 받는 관심 때문에 더 열정적으로 반응한다.


음악도 모르는 음악는 재미가 없지만 익숙한 음악은 즐길 수 있다. 7080가요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는 그 음악을 즐기며 기억한 이들이 많다는 증거다. 그 때의 아련했던 기억이 함께 떠오르면서 음악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삶의 활력소가 되어 되돌아 온다. 추억은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의 의미 찾기인 셈이다. 


여기까지 오고보니 생물심학은 기계적 메카니즘만은 아닌 것 같다. 존재 의미를 밝혀주는 또 하나의 희미한 빛이 된다. 더 빛나기 위해 생물학자들의 수고와 철학자들의 의미 부여가 필요할 터이지만 나름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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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읽는 C. S. Lewis 


아침 일찍 일어나 거침 없는 책 읽기를 한다. 아직 눈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무겁기만 하다. 머리는 맑고 상쾌하다. 세수 한 번 하고 나니 눈도 한결 가벼워 진다. 이른 새벽의 독서는 정신 수양에 딱이다. 고집스런 철학자들의 엉성한 주장도 맞짱 뜰 수 있다. 분주한 낮이면 도무지 눈에 들어오질 난해한 책들도 한 결 수월하게 읽혀 진다. 누군가 새벽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깊이가 있다고 했던가. 맞는가 보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지만. 난 오늘 그렇게 새벽을 맞이한다.


C. S. Lewis의 신간이 나왔다. 얼마 전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C. S. Lewis 전기를 읽고 새삼스런 감동에 잠겼다. 연약하기 그지 없는 지성의 갈대를 보았다. 이번에 출간된 순례자의 귀향은 어떤 책 일까. '기독교, 이성, 낭만주의에 대한 알레고리적 옹호서'라는 부제가 붙었다. 영적 순례기란 설명도 따라 붙는다. 아무래도 기독교 변증서가 아닐까 싶다. 그 외에도 루이스의 저작들이 몇 개 더 보인다. 아직 번역이 안 된 탓인지 궁금하기 그지 없다. 


이번 <순례자의 귀향>도 홍종락이 옮겼다. 그의 번역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으니 원전을 읽는 것만큼 좋다. 하여튼 루이스의 책은 새벽이 좋다. 한 가지 약점은 매일 새벽마다 읽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 기회에 C. S. Lewis를 잡아야 겠다. 감이라도 잡아야 겠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잠을 줄여가며 읽을 수 밖에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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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주목 신간 11월 둘째주 

C. S. Lewis를 읽다.


한 사람의 전기를 쓴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어떤 작가는 좋은 글을 쓰려면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라고 충고한다. 한 사람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지식이 그러하듯 사람도 그렇다. 한 사람은 씨앗과 같아서 한 사람에서 비슷한 사람이 보이고, 극단의 사람이 보이고, 전후의 인생을 통해 삶의 변화와 성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 사람을 전기를 읽는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근래에 들어와 루이스를 읽고 있다. 이미 오래 전 루이스를 접했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몇 권의 책을 읽을 뿐, 더 이상의 진보는 없었다. 그러다 지난달부터 집중적으로 읽게 되었다. 그저 유명한 사람이기에 읽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이기적이라 자신에게 어떤 연관이 있을 때 호기심이 커지고 관심이 높아지는 법이다. 우연한 기회에 맛을 본 경험도 친밀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전후의 경우가 합해진 것이다. 필요하기도 했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하면 맛을 들였다. 그리고 중독된 것이다.

 

이번에 루이스의 신간이 나왔다. 엄밀하게 따지면 루이스의 책이 아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쓴 루이스 전기다. 그렇지만 루이스를 더 잘 알아간다는 의미에서 루이스라는 범주 안에 넣었다. 나니아 연대기는 영화로 보았다. 영국인이 아니라 그런지 왠지 낯설고 어색했다. 저게 뭐지? 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순전한 기독교와 스크루페이프의 편지가 더 공감이 된다.

















루이스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참화를 몸으로 받았다. 1차 대전 때 옥스퍼드에 입학하고 전쟁에 참여 했고, 2차 대전 때 교수로 있으면서 관망하기는 했지만 참상을 그대로 보았다. 루이스의 전기를 쓴 맥그라스 역시 옥스퍼드 출신이며 동일한 성공회에 몸담고 있다. 저명한 교수로 신학자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영국을 대표하는 복음주의 신학자로 활약하고 있다. 필자는 작년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을 접하고 맥그라스의 학문적 성취에 매료 되었다. 그 전에도 몇 권의 작은 책을 접했지만 그 책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이 후 맥그라스에 관심을 두고 몇 권의 책을 더 읽었다. 대체로 <이기적 유전자>로 대표되는 도킨스의 주장을 반박하고 기독교를 옹호한다. 맥그라스는 생물학자이기에 도킨스의 주장을 학문적 근거로 반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루이스의 저작 뿐 아니라 그에 관련된 서적들도 연이어 출간 되고 있고, 되었다. 루이스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난 것은 도태하는 기독교가 좀 더 깊고 넓은 통찰력을 얻으려는 시도다. 루이스는 그런 대상으로서 적합하다. 문학 전공자이며 교수였던 루이스는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능력뿐 아니라 인간의 실존과 본성에 관한 깊은 인문학적 실력도 겸비하고 있다. 이러한 루이스의 지혜의 빌려 오고 싶은 것은 당연지시다. 루이스의 저작도 중요하지만 그와 관련된 주변 상황들도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책을 읽어 왔고, 누구의 영향을 받았으며, 어떤 친구들이 있고, 철학적 난제들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한 사람의 궤적을 통찰함으로 수많은 사람을 읽을 수 있다. 루이스를 신봉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를 뛰어넘기 위해서다. 그는 지금 절실히 필요한 존재다. 암울한 현시대의 흑암을 걷어내기 위해 그의 빛을 잠깐 빌려오는 것은 타당하다. 겨울이 왔다. 따스한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루이스와 즐거운 차 한 잔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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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이버대학 2014-02-1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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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차이나 - 중국 소비DNA와 소비트렌드 집중 해부
김난도.전미영.김서영 지음 / 오우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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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장 이렇게 정복하라


일단 대 환영이다. 김난도 교수가 자기 자리를 찾았다. 그는 청년 멘토가 본업이 아니다. 이 책이 보여주듯 그는 시대를 읽는 학자다. 그래서 난 이 책이 무엇보다 김난도 교수다운 책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지금까지 무모했던 중국시장에 대한 도전을 깔끔하게 정리했고, 분명하게 길을 제시해 주었다. <트렌드 차이나>는 어떤 면에서나 대환영이다. 중국에 관심 있는 독자나 기업가,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최고의 책이다. 중국 해부학을 넘어 시대를 통찰하는 탁월함이 엿보인다.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 보자.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중국 시장에 환상 내지는 신화에 갇혀 제대로 중국을 볼 수 없었다.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말이 더 옳다. 우스갯 소리로 중국-'차이나'는 우리나라 상품과 질적으로 '차이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중국은 무식하고 어리석은 개발도상국쯤으로 무시하기 때문이다. 교만했던 지난날의 과오 때문에 그동안 우리나라는 중국시장에서 백전백패의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극소수의 기업 외는 수년 안에 말아먹고 철수하거나 망하고 말았다. 목이 곧은 대가는 이렇게 비싸다.

 

목이 곧은 시대의 착각을 들어보자. 저자는 이것을 중국 시장에 대한 '여섯 가지 신화'(31쪽)로 명했다. 1. '단일시장의 신화' 13억 5천만이라는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껌 한 통씩만 팔아도 13억 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31쪽) 2.'보편적 가치의 신화'는 동일한 세그먼트 즉 소비자를 동일하게 보는 것이다. 한국의 20대 특성이 중국에도 먹힌다는 착각이다.(33쪽) 3.'트리클 다운의 신화'는 물망울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듯 주요한 도시에서 유행하면 다른 다시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중국을 너무 작게 본 결과다. 4.'후진시장의 신화'는 우리나라 90년대와 비슷하니 그 때에 맞추어 전략을 짜면 된다고 생각한다.(37쪽) 현장을 보지 않는 게으른 생각이 낳은 오판이다. 5.'프리미엄의 신화'는 명품이면 사족을 못 쓴다는 그릇된 생각이다.(37쪽) 마지막 6.한류의 신화'다. 언제까지 한류가 유지될까. 보수주의 중국인들은 벌써 한류를 경계하고 있다. 도시마다 한류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하나의 중국이 아니다. 많은 나라들의 총체가 중국이다.

 

저자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생각의 관행을 잊고 다시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그럼 어떻게 중국시장을 다시 볼까. 이점에 있어서 이 책이 효과를 톡톡히 보여준다. 거시적 이론을 겸하면서도 미시적 관점에서 철저하게 현장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소비자를 세분화segmentation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개가 모여서 된 복합적이고 다층적 나라다. 수많은 소수민족이 존재하고, 수많은 방언과 문자가 엄연히 존재한다. 사상과 철학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보편적 마케팅 기법을 버리고 디테일한 마케팅을 구사해야 한다. 그는 중국의 소비자 타입을 6개로 분류했다.

 

최고 수준의 럭셔리 소비자인 VIP형, 개인의 만족을 지향하는 자기만 족형,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형, 현실을 놓지 않으면서 소비를 추구하는 실속형, 소비가 주도적이지 않지만 소비를 열망하는 열망형, 마지막은 안 쓰는 게 버는 것이라는 검약형이다. 소비자를 구분하고 차별화된 마케팅을 시도할 때 실패의 쓴맛을 보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한국 시장 개입은 도를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해운대 계발 뿐 아니라 제주의 땅은 절반이 중국사람 소유라는 유언비어가 회자되고 있다. 뉴스는 중국의 거대자본이 한국에 밀려오고 있다고 보도한다. 세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체감으로 필자 또한 강하게 느낀다. 얼마 전 다녀온 산행과 제주 여행에서도 중국인이 절반을 넘어선 것을 보면 중국은 변한 것이 확실하다. 거리에도 일본어만 내걸었던 시대가 지나고 중국의 간자체가 눈에 많이 띈다. 중국은 이미 생산국에서 소비국으로의 전환이 일어났다.(23쪽) 이뿐 아니라 도시화가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도시 문화, 즉 상품을 소비하는 존재로서의 변화를 말한다. 이제 중국을 제대로 공부할 때가 된 거이다.

 

1부에서 중국 소비자 유형을 소개하고, 2부에서는 중국인의 7대 소비DNA, 즉 성향을 파악하는데 주력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중국 소비시장의 최근 트렌드를 소개 한다. 주목할 점은 마지막 3부인데, 그곳에서 최근의 중국의 3대 변화를 언급한다. 하나, 삶의 질에 눈을 뜨고, 둘째, 니치시장장의 주류화, 세 번째는 중국식 신실용주의다.(294쪽)

 

저자의 결론은 간단하다. 중국을 하나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도시와 도시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세대와 세대 간의 행간을 읽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생존이 아닌 향유를 꿈꾸는 소비체제로 변환 되었다. 다행한 일이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난도 교수다운 책의 출간, 또한 중국 시장에 대한 가능성과 능력을 보여준 멋진 책이다. 다시 한 번 출간을 축하하며 고마움을 전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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