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주목 신간 11월 둘째주
C. S. Lewis를 읽다.
한 사람의 전기를 쓴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어떤 작가는 좋은 글을 쓰려면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라고 충고한다. 한 사람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지식이 그러하듯 사람도 그렇다. 한 사람은 씨앗과 같아서 한 사람에서 비슷한 사람이 보이고, 극단의 사람이 보이고, 전후의 인생을 통해 삶의 변화와 성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 사람을 전기를 읽는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근래에 들어와 루이스를 읽고 있다. 이미 오래 전 루이스를 접했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몇 권의 책을 읽을 뿐, 더 이상의 진보는 없었다. 그러다 지난달부터 집중적으로 읽게 되었다. 그저 유명한 사람이기에 읽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이기적이라 자신에게 어떤 연관이 있을 때 호기심이 커지고 관심이 높아지는 법이다. 우연한 기회에 맛을 본 경험도 친밀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전후의 경우가 합해진 것이다. 필요하기도 했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하면 맛을 들였다. 그리고 중독된 것이다.
이번에 루이스의 신간이 나왔다. 엄밀하게 따지면 루이스의 책이 아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쓴 루이스 전기다. 그렇지만 루이스를 더 잘 알아간다는 의미에서 루이스라는 범주 안에 넣었다. 나니아 연대기는 영화로 보았다. 영국인이 아니라 그런지 왠지 낯설고 어색했다. 저게 뭐지? 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순전한 기독교와 스크루페이프의 편지가 더 공감이 된다.
루이스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참화를 몸으로 받았다. 1차 대전 때 옥스퍼드에 입학하고 전쟁에 참여 했고, 2차 대전 때 교수로 있으면서 관망하기는 했지만 참상을 그대로 보았다. 루이스의 전기를 쓴 맥그라스 역시 옥스퍼드 출신이며 동일한 성공회에 몸담고 있다. 저명한 교수로 신학자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영국을 대표하는 복음주의 신학자로 활약하고 있다. 필자는 작년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을 접하고 맥그라스의 학문적 성취에 매료 되었다. 그 전에도 몇 권의 작은 책을 접했지만 그 책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이 후 맥그라스에 관심을 두고 몇 권의 책을 더 읽었다. 대체로 <이기적 유전자>로 대표되는 도킨스의 주장을 반박하고 기독교를 옹호한다. 맥그라스는 생물학자이기에 도킨스의 주장을 학문적 근거로 반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루이스의 저작 뿐 아니라 그에 관련된 서적들도 연이어 출간 되고 있고, 되었다. 루이스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난 것은 도태하는 기독교가 좀 더 깊고 넓은 통찰력을 얻으려는 시도다. 루이스는 그런 대상으로서 적합하다. 문학 전공자이며 교수였던 루이스는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능력뿐 아니라 인간의 실존과 본성에 관한 깊은 인문학적 실력도 겸비하고 있다. 이러한 루이스의 지혜의 빌려 오고 싶은 것은 당연지시다. 루이스의 저작도 중요하지만 그와 관련된 주변 상황들도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책을 읽어 왔고, 누구의 영향을 받았으며, 어떤 친구들이 있고, 철학적 난제들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한 사람의 궤적을 통찰함으로 수많은 사람을 읽을 수 있다. 루이스를 신봉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를 뛰어넘기 위해서다. 그는 지금 절실히 필요한 존재다. 암울한 현시대의 흑암을 걷어내기 위해 그의 빛을 잠깐 빌려오는 것은 타당하다. 겨울이 왔다. 따스한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루이스와 즐거운 차 한 잔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