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에 고양이가 앉아있다. 생김새는 영락 없는 암컷이다. 동물들은 대체로 예쁘고 귀여운 것들은 수컷이다. 고양이도 다르지 않다. 우리집 고양이들도 두 마리가 있는 멋진 녀석은 역시 수컷이다. 이녀석은 수컷인듯 하지만 입은 옷이 그다지 에쁘지 않다. 뒤섞여 있다. 아버님 말로는 삼색 고양이는 무조건 암컷이란다. 확인해 보니 삼색이라 암컷인 고양이도 있지만, 이색에도 암컷이 존재한다. 뭐.. 뒤쪽 엉덩이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가까이 갈 수 없으니 말이다. 







래리 허타도의 책이 눈에 들어온다. 에딘버러 대학의 명예교수이며, 신약 성서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는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발전한 이유를 찾는다.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탁월한 도덕성이다. 일반인에게서 찾을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있었던 것이다. 다른 것도 많겠지만 이것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살았는지 보여준다. 







그의 또 다른 책도 읽어 볼 만한다. 좋은 책이다. 멀리있는 고양이를 보고서 암컷인지 수컷인 알 수 있다면, 이 책들도 분명 좋은 책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아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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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10-19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도 많겠지만 이것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살았는지 보여준다

집요함.. 이라는 단어 저 좋아해요

낭만인생 2017-10-19 22:38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김요한 목사의 <상식이 통하는 목사>를 읽고 있다. 말 그대로 상식이 통하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담 현재의 목사들은 상식이 통하지 않을까?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야 많다. 상식이란 개념부터 정의할 노릇이지만, 멀리까지 가지 말고 그냥 상식적인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목사는 상식을 뛰어 넘는 탁월함을 지녀야하는데, 거꾸로 상식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불통하는 목사, 상식 없는 목사가 태반이다. 그러나 세상이 얼마나 골치 아플까? 


목사공부는 무조건 읽어야 한다. 옥한흠 목사의 <목사가 목사에게>도 주의하여 읽을 필요가 있다. 요즘 되어가는 교회 이야기들이 옥한흠 목사의 탓이라고 치부하기는 과한 면이 있지만 상당한 책임은 있다고 믿는다. 왜 그럴까? 현재 옥한흠 목사를 추종하는 개혁적이라는 목회자들의 주장은 적폐적이다. 그토록 옥한흠 목사를 좋아하고 따랐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당시 가진 불온한 싹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목사도 그 시대 사람이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대를 깊이 고민하며 다음 세대는 어떨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목회의 방향은 사뭇 달라지지 않을까? 만약 옥한흠 목사가 지금 살아 계신다면 적폐세력과 같은 후배들도 좀더 개혁적이지 않을까? 그러니 옥목사님은 목사들에게 좀더 다른 방향으로 목회를 가르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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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엔 가젠의 믿음의 여인들이 새옷을 입고 나왔다. 성경속 여인들의 신앙과 삶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신기한건 이게 소그룹 용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나온 책이 다시 읽히고 기억 속에서 망각되지 않고 자리를 찾는 것은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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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책을 물고 온다.



종로서적에서 나온 기독교 명저 60선을 찾아 보았다. 이 책은 85년 6월 20일이 초판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89년 4쇄판이다. 가격은 무려 4500원이다. 여기서 소개한 책들이 있을까?


개혁된 목사는 참된 목자로 바뀌어 있다. 
















폰 라트의 구약 신학은 있다. 오스카 쿨만의 <그리스도와 시간>은 있다. 절판 된 것이지만.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가 보이고, 다른 몇 권도 보인다. 
















기독교의 본질 세 권이 보인다. 한 권은 포이에르바하. 두 번째는 하르락, 마지막은 하르낙의 책을 정리한 것이다. 세 권 모두 읽을 만한 책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 과 팡세는 명작이라 계속 판매된다. 


















케제만의 바울 신학의 주제, 하비콕스의 <세속도시>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 케제만의 책만 절판이다. 














































칼 바르트의 <복음주의 신학 입문>은 여전히 번역되고 있다. 그러나 바르트는 요즘 중요하게 읽어야할 책들이다. 그에 관하여, 그의, 그를 향한 책들은 모두 읽어야 한다. 지금은 바르트의 시대다. 

































아직 60권은 아니지만 여기서. 끝.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책들임에는 분명하다. 절판된 책도 있고 계속출간되는 책도 있다. 그 기준은 아마도 필요성이거나, 책이 가진 역사성이리라. 어떤 책은 그 시대에만 통하고, 어떤 책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읽히는 책이 있다. 둘 사이를 잘 분별하는 것이 저자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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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10-16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틴 부버 <나와 너>

나는 너야..너는 나야..
이렇게 고백한 사람이 생각나네요

낭만인생 2017-10-18 21:4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저 책 제목이 특이 해서요.. 그런데 책 의외로 어렵습니다.
 
기독교 명저 60선 - 현대인을위한신학강좌 12
편집부 / 종로서적 / 1985년 6월
평점 :
절판



종로서적 기독교 명저 60

 


 

나에게 종로서적 기억은 없다. 워낙 시골에 살아서 그런 탓도 있고, 유청소년 시절 책은 거의 읽은 적이 없는 이유기도 하다. 읽고 싶어도 책 자체가 시골에 거의 없었다. 내 기억으로도 80년대 책 값이 쌌다고 하지만 다른 물건 값과 비교해보면 결코 싼 것이 아니다. 불과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책을 헌책방에 팔아 생계를 유지한 이야기가 적지 않다. 도서 정가제 이후 책 값이 폭등하기는 했지만, 그건 전반적인 사회물가의 상승율에 비한다면 턱없이 낮은 가격이다.

 

 

 

이 책을 어디서 구입했는지 기억이 없다. 아마도 구입한지 4년 이상 지난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면 이 책은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구입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알라딘 중고서점은 헌책은 팔지 않기 때문이다. 중고와 헌책은 엄연히 다르다. 헌책은 쓰레기든지 희귀품이던지 둘 중 하나다. 알라딘 처럼 현재 거래되는 책도 있지만 그런 개념과는 사뭇다른 것이 헌책방이다. 사실 알라딘 중고서점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새책과 헌책뿐이었다. 그런데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기면서 '중고'라는 헌책과 새책의 중간지점이 생긴 것이다. 마치 천국과 지옥의 중간인 연옥처럼 말이다.

 


 

'김정식장서'라는 낙인이 찍혀있다. 김정식, 누굴까? 책을 보니 읽은 흔적이 하나도 없다. 이것또한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책은 정말 아껴읽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안 읽었든지. 필자가 보기에 후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장서' 낙인을 찍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책을 읽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책을 아끼지 않는다. 책을 험하게 다루는 사람이 진짜 책을 읽는 사람이다. 독서는 깨끗하게 할 수 없다. 그건 독서광들의 무언의 약속이다. 아니 법칙이다. 그렇다고 '절대'는 아니다. 보편적 성향이다. 그러니 이 사람은 '장서'의 낙인을 찍기는 했지만 책을 소장하고 싶은 욕망을 갖는 사람이지 책을 읽는 독서광은 아닌 것이다.

 

 

 

60권 중 내가 읽은 책은 고작 20권 정도다. 하기야 그동안 나의 독서력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던가. 깊이가 있는거나 신학적으로 중요한 책은 거의 읽지 않고 자기계발과 영성관련 책에 집중했다. 또한 최근에는 서평가로 활동하면서 신간들을 읽고 서평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어 진작 읽어야할 고전들을 읽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곁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는 책들은 미리 사두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고백록은 이미 읽었고, 신국론은 아직이다. 안셀무스의 '쿠르 데우스 호모'는 무슨 책일까? 그의 신존재증명인 '프로슬로기온'은 읽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기독교 강요, 실락원, 팡세, 천로역정, 죽음에 이르는 병도 읽었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것을 기독교 고전에 넣다니. 두어달전에 구입한 민음사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갖고 있지만 아직 열페이지도 읽지 못했다. 내용이 궁금히 들어가니 김희보가 평해 놓았다.

 

 

 

"도스토예프스키 최후의 소설이며, 그의 창작의 총결산이요, 그의 정신적 탐구의 궁극적 표현이다. 스케일의 웅대함과 구성이 기발함 그리고 심리 분석의 심각함과 종교적 신념의 고양에 있어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비되고 있다."

 

 

 

단순한 소설로만 알았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대작 답게 무신론과의 대화, 예수의 탄핵 등 다분히 종교적 내용이 적지 않다. 아마도 토스토예프스키만의 독특한 휴머니즘에 근거한 소설이 아닐까? 당장 읽어야 겠다. 아돌프 폰 하르낙(Harnack)<기독교 본질>을 찾아왔다. 해설자가 김명혁인데 내가 아는 김명혁 교수인지 정확하지 않다. 해석자는 소개가 없으니.

 

 

 

고신과 총신을 나온 필자로서 하르낙은 빨간색이다. 독일 자유주의 최전선에서도 요주의 인물이 바로 하르낙이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그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나 신학적 비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잠깐 잠깐 비판적 시각으로만 접한 신학자이다. 하기야 칼 바르트도 하르낙 못지 않은 빨간딱지의 인물이 아니던가. 문제는 초월의 왕자 사자를 그림으로만보고 단 한 번도 접해보지 않고 사자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그것은 앎이 아니다. 하르낙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사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자에관해' 하는 것이다.

 

 

 

왜그리 하르낙을 무서워했을까? 물으면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진리에 대한 확신과 성경을 믿는다면 왜 자유주의자들을 멀리할까? 물들까봐? 논리적으로 압도 당할까봐? 뭐지? 왠지 그러한 심리는 일종의 지적 열등감이나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려는 앎의 나태함이 아닐까? 내가 보기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책에도 얻을 것이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난 세속을 터부시한 터툴리안보다 통합하려고 했던 어거스틴의 학문적 관점을 더 선호하고 옳다고 믿는다.

 

 

 

"하르낙은 예수가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느냐는(오타로 보인다. ''로 써야하지 않을까?) 문제는 신비에 속하며 심리학이나 역사적 연구도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고 했다. 복음과 교리와의 관계에 대한 신조 문제에 대해서 하르낙은 복음이 교리의 체계나 우주에 관한 철학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복음은 영생을 가져다 주는 기쁜 소식이요 바른 삶을 가르치는 교훈이다."

 

 

즉 하르낙은 예수를 사람으로만 보았다. 이것이 문제다. 초대교회 공의회는 이미 예수를 사람이며 동시에 신성을 가진 존재로 보았다. 인성과 신성이 모순 없이 결합되어 있는 존재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나타난 품성론이다.

 

 

"삼위 중에서 제2위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은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와 동일하시고 동일한 본체의 소유자이시며, 때가 차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그녀의 몸을 통하여 성령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오시어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으나 죄는 없으시다. 신성과 인성의 다른 두 본성이 온전하고 완전하게 한 인격 안에서 전환, 혼성 또는 혼란 됨이 없이 불가분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시다. 하나님의 아들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인간이시며,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단 하나이신 그리스도시요,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분명 하르낙이나 포이에르바하 등은 필자의 신앙관과 같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에게서 배울점도 적지 않다는 것도 알 필요가 있다. 종로서적의 <기독교 명저 60>30년이 넘은 오래된 책이나 지금도 의식있는 기독교인들이 읽어도 좋은 책들을 선별해 놓았다. 자유주의 신학이 두렵지 않은 신자나 목회자들은 한 번 도전해 볼만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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