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 21회] 

놀이가 사라진 학교


 

아내와 함께 서점에 들렀다. 봄이 오는 소리가 아내를 집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향긋한 내음이 물씬 풍기는 거리는 아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냥 좋단다. 나오기를 참 잘했단다. 이럴 때는 남편이 있어 좋단다. 그래 오늘 만큼은 으스대도 되겠지. 들뜬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서점에 들렀다. 한 시간 정도를 서점에서 책을 골랐다. 봄을 맞아 읽을 책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다. 아내는 한 곳에서 꿈쩍도 않고 책을 읽는다. 책을 고르고 나서 차에서 아내는 자신이 고른 책을 이야기를 꺼낸다. 장애영의 <엄마의 기준이 아이의 수준을 만든다>이다. 아직 앞쪽 밖에 읽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은 더 읽어야겠지만 앞부분만으로도 책을 고르기에 주저함이 없다 한다.

 

아들이 한 명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서 홈스쿨을 시작한다. 놀랍게도 2년 만에 고등학교 졸업자격까지 얻고 연세대에 입학한다. 학교에서 죽도록 공부해도 가기 힘든 연세대를 혼자 공부해서 갔다는 이야기에 아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한숨이다. 우리 아이들은 불가능하다고. 그렇다. 우리 애들은 불가능하다. 놀기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좋아하고, 스마트폰에 빠진 우리 아이들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홈스쿨 하지 말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싫어서가 아니라 할 수가 없어서다.

 

불행한 아이들

 

아이들이 불행하다. 자기보다 더 커 보이는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쓰리다.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키도 작고 공부도 못하는 편이란 부모로서 안타까움이 든다. 무엇이 힘드냐고 물어보면, 그냥 앉아 있는 시간이 힘들다는 것이다. 4년 가까운 시간동안 학습에 대한 나름대로 공부를 해왔다. 나도 중고등학교를 지나왔는데 요즘처럼 불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학교에 대한 생각이 극히 부정적이다.

 

친구 없는 학교

 

아이들이 자신들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쁨도 없고 친구간의 우정도 없고, 오직 경쟁과 성적의 압박만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선생님은 중고학교 친구가 진짜 친구라며 학창시절의 우정을 중요하게 말씀하셨다. 과연 시간이 흐르고 나니 고등학교 친구는 아직도 연락하며 산다. 그러나 초등학교 친구들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치지지 않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 지금은 어떤가. 친구가 없다고 난리다. 대학이란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트도 빌려주지 않고, 공부법도 알려주지 않는다. 나보다 친구가 잘하면 내신에서 밀리고 그것이 결국 대학의 당락과 연결된다. 친구가 사라진 것이다. 친구가 없다는 것은 위로받을 곳 없고, 기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정이 우상화된 학교의 피폐한 모습이다.

 

놀이가 사라진 학교

 

친구가 없는 이유가 뭘까? 단지 성적 때문일까? 아니다. 놀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의 S대는 예능 관련과를 시험 성적순으로 뽑는다고 한다. 피아노를 아무리 잘 쳐도 성적이 낮으면 탈락된다. 얼마나 우스운가. 피아노도 잘 치고 수학도 잘하면 좋다. 그러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달리기도 잘하고 화학도 잘하면 좋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실기 위주가 아닌 성적 위주로 선발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교육이 가진 아이러니다. 성적이 우상이 되다보니 학교의 모든 수업은 놀이가 아닌 강제화된 지식축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노는 시간이 없다. 여가 시간, 그룹모임 시간 등이 사라진 것이다. 7-80년대 대학교는 서클 왕국이었다. 대학교까지는 아니었지만 고등학교도 비슷한 문화체험과 놀이 문화가 공존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몸으로 활동하는 것이 사라지고 머리만 쓰는 화성인이 되어가고 있다. 맥박이 같아야 친구가 된다. 함께 이야기하고, 몸을 부대끼고, 야성을 발사하지 않으면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 학교는 공부가 신이 되어 우정을 터부시하고 있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 눈물이 절로 난다.


공부, 몸을 움직여야 잘 된다.

 

공부는 뇌가 한다. 그러나 뇌는 몸이 움직여야 제대로 작동한다. 최근의 뇌 연구가들은 운동은 학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운동을 하면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뇌에 산소 공급이 많아진다. 더 많은 산소가 뇌에 공급되면 뇌는 활동적이 되고, 상쾌한 기분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즐겨 읽는 <천재가 된 제롬>의 저자는 이타마르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지. 일정한 리듬과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 집중하는 데 도움이 돼. 그렇게 하면 뇌에 산소 공급이 되고 분명한 사고력과 집중력을 갖게 되지.”

 

앎과 삶은 다르지 않다. 몸과 지식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고미숙은 <호모 쿵푸스>에서 말과 몸과 삶이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몸과 공부가 분리되는 것만큼 불행한 것도 없다. 머리로는 나쁘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몸은 여전히 나쁜 행동을 일삼는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학교가 학생들을 기르는 방식이다. 그러니 빨리 경쟁 위주의 교육방식을 폐기하고, 앎과 삶이 같은 참 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멀지 않다. ‘함께 놀면서, 함께 토론하고, 함께 도와주면 된다.’ 참 쉬운 공부, 정말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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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읽으면 좋은 책들


사순절이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사순절이 어떤 의미일까? 예수의 고난을 더 깊이 묵상하고 몸으로 살아가려시는 최소한의 몸부림은 아닐까?


 첫잭으로 톰라이트의 책을 권한다. 마태복음을 본문으로 조용히 사순절을 목상하도록 배려했다. 맥스 루케이도의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역시 고난 주간에 읽으면 좋을 책이다. 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는 십자가 가지는 신학적 의미를 깊이 파헤친다. 마지막으로 로이드 존스의 <십가자>는 십자가에 대한 성경적 해석으로 가장 탁월한 책이다. 


















절판된 책이지만 고난에 대한 묵상집으로 크룸마허의 <고난받는 그리스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떤 형제에게 이 책을 권했다. 며칠 뒤에 하는 말이 '너무 지루하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많이 놀랐다. 이렇게 탁월한 책을 지루하다고 생각하디니. 누구나 같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던 책이다. 이 책은 빨리 읽을 수 없는 책이다. 하루 하루 조금씩 씹어 먹어야 한다. 소처럼 되새기면 더 좋은 책이다. 그렇지 않는가. 하루에 많은 양을 먹으면 배탈이 나듯 영의 양식도 한꺼 번에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존 폭스의 <순교자 열전>도 읽으면 좋다. 존 폭스는 종교개혁 당시 특이한 위치를 점유한다. 메리 여왕 시절의 핍박을 피해 대력으로 넘어가 개혁주의자들과 교제를 나눈다. 


존 낙스가 메리 여왕에 대하여 물리적인 힘을 가했다면, 폭스는 학자다움을 견지하며 박애와 긍휼을 중요시 했다. 그는 <순교자 열전>을 통해 물리적 힘으로 종교를 핍박하고 억압하는 것의 위험과 어리석음을 고발한다. 


이 후 <순교자 열전>은 존 번역의 <천로역정>과 더불어 모든 집에 의무적으로 배치되는 교과서가 되었다. 아쉽게도 현대는 존 폭스의 책이 등한시 되고 있다. 


이번에 포이에마에서 열심을 하대 폭스의 순교사를 현대적 감각에 맞추어 다시 펴내었다. 사순절을 보면서 신앙의 본을 배우려면 이 책의 순교자들을 읽기를 바란다. 존 폭스의 순교사는 일부의 편집자들이 중요한 사화를 추려 출간한 책이 몇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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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력 키우기



글쓰기도 능력이다. 그것도 탁월한. 현대처럼 쓰기 능력이 요구되는 사회도 없는 듯하다. 왜곡된 글쓰기는 문제와 어려움을 가중 시킨다. 왜 그럴까? 문장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오해는 대학입시로 치러지는 논술의 영향이 크다. 불과 두어달만에 논술 완성이니 완벽한 문장력 키우기 등의 허황된 주장들이 글쓰기를 곡해시킨 주범들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글쓰기 교육은 능력을 배양하는 수업이 아닌 반감시키는 적이다. 그러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문장력을 키우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1. 많이 읽어라.


다독이 답이다. 먹지 않고 배설할 수 없다. 먼저 마음 껏 먹어야 한다. 그런다음 배설할 수 있다. 문제는 좋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듯 좋은 책을 많이 먹어야 자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176쪽)


스티븐 킹은 일년에 70-80권을 읽는데 주로 소설이다. 연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읽는다. 그의 말마따나 '이때에도 배움의 과정은 계속된다.'고 한다. 그러나 읽기는 곧 배우는 것이요. 즐거움을 위한 수단이다. 




2. 좋은 문장을 접하라.


기초가 중요하고 기본이 다져야 높은 단계로 올라간다. 나쁜 문장은 나쁜 문장을 낳는다. 그러니 처음부터 글쓰기 배우고 싶다면 좋은 문자, 대가들의 문장을 접하라. 아주 작고 얇은 책이지만 바른 문장을 배우는데 적지 않는 도움을 받은 책이 있다. 송준호의 <좋은 문장 나쁜 문장>인데,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렇게 털어 놓는다. 


"어떻게 하면 문장을 잘 쓸 수 있는지 물어 오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때마다 들려주는 답은 하나다. 많이 읽고 자주 써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고개를 갸윳거리거나 끄덕이다가 기어이 한마디 한다. '에이, 그걸 누가 몰라서 묻나.' ...  좋은 문장으로 쓴 글은 우리 주위에 아주 흔하다. 그걸 꼼꼼하게 많이 읽고, 생각날 때마다 자주 쓰다 보면 좋은 문장을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연 옳은 말이다. 좋은 문장을 많이 접하지 않는 한 좋은 글을 쓰기 어렵다. 먼저는 양이고, 그 다음은 좋은 문장이다.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니 '좋은 문장을 많이 접해야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초적인 글쓰기를 배우고자 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중요한 글쓰기 훈련과 필요한 방법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간결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한 부분만 인용해 보자.


나쁜문장 :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르자 발신음이 계속 들렸는데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좋은 문장: 나를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렀다. 발신이 계속 들렸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9쪽에서 인용)


문장이 너무 길면 가독력이 떨어져 읽기가 어렵다. 이럴 때는 문장을 짧게 끊으면 된다. 글이 더 많이지는 것 같지만 읽으면 훨씬 읽는 속도가 빠르고 이해도 쉬워진다. 짧은 문장이 최선은 아니지만 좋은 문장의 기본인 것은 분명하다.


3. 실천이 중요하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 했다. 결국 써보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 써라. 무조건 써라. 다작가로 알려진 일본의 사이토 다카시의 <원고 10장쓰는 힘>에서 글쓰기는 마라톤과 비슷하여 하루하루 꾸준히 쓰지 않으면 결코 문장력이 늘지 않는다고 말한다. 원고지 10장은 기초체력을 쌓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쓰기를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전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생각은 글쓰기에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이토 다카시는 이러한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아 준다. 한 순간에 42.195km를 달릴 수는 없지만 매일 연습하다보면 지구력이 생겨 마침내 완주할 수 있게 된다. 글쓰기도 하루에 한장쓰기 어렵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결국 책 한 권 쓰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니 매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 베껴쓰기


누군가 말한다. 베껴쓰기가 과연 효과가 있느냐구? 나도 궁금했다. 그래서 작년에 좋은 책을 하나 골라 중요한 부분을 노트에 손으로 직접 베껴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달이 지난 후 전처럼 일상을 글로 표현했더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글이 나왔다. 베껴쓰기는 콩나물에 물주기다. 


필사적으로 필사해야 한다. 많은 작가들은 전대의 탁월한 작가들의 책을 통째로 필사했다. 필사는 단순한 글 옮기기가 아니다. 이론적을 배울 수 없는 문체와 느낌, 사상과 철학이 고스란히 문장을 통해 스며들어 온다. 베껴쓰기는 통해 가장 빨리 그리고 명확하게 좋은 문장력을 갖게 된다.


작가요 글쓰기 강사로 유명한 송숙희는 최고의 문장력 숙득 방법은 베껴쓰기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베껴쓰기를 통해 배워야할 좋은 점을 무의식의 세계 속에 집어 넣을 수 있다. 단 좋은 문장, 명문장 등을 베껴야 한다.




나가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적다. 글쓰는 사람은 더욱 적다. 적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있다는 뜻이고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문장력을 키우도 글쓰기에 도전하게 된다면 분명 좋은 작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티븐 킹의 이야기를 한 번만 더 들어보자.


"여러분이 죽어라고 열심히 노력하기가 귀찮다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 뮤즈는 땅에서 지낸다. 그는 지하실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여러분이 뮤즈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 다시 말해서 낑낑거리는 힘겨운 노동은 모두 여러분의 몫이라는 것이다."


자 어떤가. 아직 많은 부분이 부족하지만 노력한 만큼 돌려주는 것이 글쓰기다. 지금 실력 없다 탓하지 말고 노력하다보면 잘 쓰게 된다. 천릿길도 한 걸음 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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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 19회 시끄러운 도서관


도서관에 가면 조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는가. 왜 조용해야할까? 본시 우리나라의 공부는 시끄럽게 배운다. 서당에서도 그랬고, 과거 공부하는 것도 역시 입으로 낭송하며 읽고 외웠다. 이러한 전통적 배움이 어느 순간에 사라지고 침묵과 묵독으로 일관하게 되었다. 도서관은 마치 경건한 성전이나 침울한 시골같다.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근대적 배움을 적용하면서 책은 조용히 읽어야한다는 관념이 우리나라 교육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벨상의 왕국, 유대인들의 도서관은 아직도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의자를 맞대도 토론하고 대화하고 이야기 한다. 도서관치고 너무 시끄럽다. 그런데도 그들은 탁월한 지적 업적을 쌓았고, 어느 민족도 따라오지 몰할 위대한 민족이 되었다. 무엇 때문일까? 결국 공부는 몸으로 해야한다는 원초적 결론에 되돌아간 것이다.


고미숙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에서 몸과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공부는 입으로 하고 발로하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체력이 지력인 셈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스라엘은 잘 알고  그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이 아닌 노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반갑게도 영국에 이런 도서관이 들어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런던 타워햄릿츠 구에 위치한 새로운 개념의 복합도서관 ‘아이디어 스토어’가 그 주인공이다. 이 도서관은 시끄럽다.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논다. 심지어 바로 옆에 카페가 있어 차와 식사도 가능하다. 이뿐 아니다. 주변이 시장이라 시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책을 빌려가고 쉬었다 간다고 한다. 환경 친화형 도서관인 셈이다. 참으로 멋지지 않는가.





<동영상 링크>


낭독에 답이 있다. 공부는 몸으로 해야 한다. <유태인의 공부>에 보면 유태인들의 시끄러운 도서관 예시바를 소개한다. 서로 토론하고 이야기 함으로 논리를 체계화 시키고 더 깊은 사상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한다. 


"예시바는 유태인의 전통적인 학습기관이다. 우리로 따지면 일종의 도서관인 셈이다. .. 예시바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마치 술집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시끄러운 소음을 만났다. 도서관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목소리를 높여 떠들고 있었으며 어떤 이는 자리를 옮겨 다니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학생들은 각자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눴다."(62쪽)



소리를 내는 것은 혼자 공부하지 않고 '함께' 공부하는 것이며, 소통하며 교환하는 과정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려는 의도이다. 혼자서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지식을 습득하지 않고 함께 지식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통해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공부방식을 전승했다. 유태인 혼자가 아니라 '우리'의 공부를 한다. 세상과 소통하는 도서관, 자신만의 상아탑에 함몰되어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는 고집불통의 탁상공론을 일삼는 일반 공부와는 너무 다른 것이다. 


영어는 어떤가. 역시 낭독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진정한 공부가 이루어 진다. 김보경의 <낭독은 입문학이다>는 고전 낭독 클럽을 이끌면서 일어난 여러 에피소드와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낭독은 생각보다 강하다. 소리내는 것은 함께 하는 공부는 우리의 몸은 혼자가 아닌 함께 할때 더 높은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공부에 대한 개념을 다시 세워야 할 때다. 오랫동안 관행으로 자리잡은 침묵의 도서관을 바꾸고, 입을 열어 말하는 도서관, 시끄러운 도서관, 놀이와 삶이 함께 하는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 시끄러운 도서관이 갖는 의미는 하나 더 있다. 공부만을 위한 이기적 공간이 아닌 소통의 공간으로서 전인격적인 공부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전에 장유에 있는 김해기적이 도서관에 방문했을 때의 생소함과 놀라움은 시끄러운 도서관이 답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기적의 도서관의 철학을 담아 제목도 <기적의 도서관>으로 지었다. 이 책은 기적의 도서관이 갖는 소통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재미난 책이 하나 있다. 본 글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을 수 있으나 도서관 고양 <듀이>는 치료하고 소통하는 고양이의 삶을 통해 공부만이 아닌 치유의 의미로서의 공간도 절실함을 보여 준다.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히말라야 도서관>은 모두가 읽어야할 희망이 보루다. 작년 여름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샀던 <도서관 산책자>는 공공도서관 뿐만  아닌 소도서관과 개인 도서관에 관한 건축 이야기도 들려 준다. 사각형의 딱딱하고 막힌 도서관보다 소통이 가능한 공간의 필요성을 엿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소통을 갈망하다. 공부 역시 소통을 통하 공부가 참 공부다. 요즘 아이들은 학생시절도 없고, 학창시절의 친구도 없다. 모두가 적이고 경쟁자이다. 수업시간은 늘어가는데 함께 놀 수 있는 시간도 공간도 사라지고 있다. 다음학기때는 손으로 만지고 넘기는 종이책도 사라진다고 한다. 전자책으로 공부한다고 한다. 이렇게 슬픈 일이 있나.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이 머릿 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을까. 참으로 답답하다. 그나마 시끄러운 도서관을 통해 삶을 나누고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다행이다. 많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장유에 있는 김해 기적의 도서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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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 18

내 아이를 바보로 만들지 마라

 

아들은 성적 부진아다. 초등학교 3학년 쯤 되면서 시작된 ADHD는 천재적인 아이를 '병신'으로 만들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산만하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론이다. 아직 검사를 하지 않았다. 하든 안 하든 결과는 뻔하다. '주의력결핍행동과잉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준 주의력결핍행동과잉장애'라고 판단할 것이 뻔하다. 선생님들은 입을 모았다. 이 아이는 성적이 낮아 우리 반의 평균을 깎아 먹는다는 것이다. 한 명 때문에 학급 전체가 수업에 방해를 받고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교육을 철저히 해달라고 한다. 교육?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집에서 할 수 없는 교육을 학교에 위탁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교육이라니. 생뚱맞은 말에 기분이 나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과잉행동장애를 가진 부모들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다행히 교사가 직업이 지인이 있어 아들 문제로 잠깐 대화를 했다. 그 분의 이야기는 그런 아이들이 나쁜 것이 아니고, 성적위주와 책상에 앉아서 하는 주입식 공부만이 공부라고 생각하는 현 교육의 문제라는 것이다. 나름 이유 있는 변명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바보가 된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주입식 공부만을 지향하는 교육방식의 문제인 것이다




아이 자랑 좀 해야겠다. 우리 아이는 조립과 만들기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학교 대표로 나간 적도 한두 번 있을 만큼 뛰어난다. 공부는 못해도 쪼그리고 앉아 레고나 조입 로봇을 만드는 데 한두 시간 보내는 건 일도 아니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아이지만 오로지 성적이란 놈 때문에 우리 아니는 늘 '성적 부진아''바보' 취급을 받는다. 운동은 얼마나 잘하는가. 두 번 줄넘기도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자기 좋아하는 곤충은 얼마나 잘 아는지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이런데도 우리 아이는 평균을 깎아 먹는 문제아이다. 누가 우리 아이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

 

답은 다중지능에 있다. 하워드는 다중지능 이론을 펼치면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즉 공부지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말하는 것, 춤 잘 추는 것, 노래 잘하는 것, 달리기 잘하는 것 등 저마다의 타고난 재능이 있다. 그런 재능을 십분 계발하여 저마다의 개성과 특성에 맞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시작이다. 말마따나 고등학교 수학이 졸업 후 필요나 한 것인가. 기껏해야 수학전문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99% 사람은 일생에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수학을 잘해야 공부 잘한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닌가.

 

성장기의 아이와 특히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에게 현저한 산만함과 주의력 결핍 현상이 강하게 일어난다. 다음 네 권의 책을 추천한다. <퀀텀 교수법>은 다중지능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강의한 책을 엮은 것으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은 다중지능에 대한 고전이자 가장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다중지능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우리 아이의 성장 지도를 그릴 수 있다. <내 아이 다중지능의 비밀> 역시 아이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다중지능 학급경영>은 다중 지능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가를 배우는 책이다. 나도 이 책을 통해 학습의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교실만이 공부의 전부가 아니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봄이다. 아이들을 밖으로 보내는 것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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