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2 Disc) - 아웃케이스 없음
박찬옥 감독, 서우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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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둘에 봤던 그녀의 영화는 그냥 그랬다. 단편 소설을 보는 듯하여 적당히 지겨웠다. 다만 시간을 들인 값은 한 영화 정도였다. 작년 여름, 티비에서 그녀의 영화를 다시 봤다. 놀라웠다. 대사나 장면의 분위기가 일찍이 내가 지향하던 모습이었다. 지난 몇 년간의 삶과 되새김이 영화를 겹으로 보게 한 덕이다. 박해일의 모습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한 듯하여 멈칫하기도 했다. 조금은 비겁하고 다소 삶이 버거운 그의 모습이 가여우면서 안타까웠다. 박해일의 선하고 유약한 눈빛이 가장 빛났던 영화였던 듯하다. 기형도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질투는 나의 힘’ 말이다.

파주를 봤다. 6년 전의 작품보다 더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하려 애쓴다. 전작은 나약한 지식인이 기성세대의 힘을 동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파주에선 사랑이란 단어로 규정짓기 힘든 절절함과 애틋함이 드러난다. 언론에서 말하듯 불륜이란 카테고리로 묶기에는 그 언어가 헐겁다. 그저 사랑이란 다습고 너른 품새를 보여주는 언어만이 영화 속 인물들과 짝지을 수 있겠다. 결국 이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하려기보다는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래서 혼동스럽고 서사를 따라잡기 쉽지 않다.

각자는 깊은 슬픔을 안은 눈빛을 한다. 장률 감독의 ‘이리’에서처럼 그 슬픔은 지극히 온당하지만 감당해내기 버겁다. 그저 그들이 슬퍼 보이기에 슬픈 무안함 때문이다. 왜 슬픈지는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이유는 공감을 하기 위해서이고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슬픔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의 눈으로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관객으로선 그런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서사보다 미세한 장면에 마음을 쏟게 한다. 헐거운 서사 덕에 영화를 가슴에 아로새기기 힘든 탓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심상하다. 일상처럼 내지르고 버릇처럼 미소 짓는다. 자연광을 쓴 듯한 장면의 밝음이 씁쓸한 각자의 삶을 더 외롭게 한다. 그 눈부심이 지나쳐, 빛보단 그림자에 눈이 간다. 햇살이 따스하기 보단 인물들을 방기하는 인상마저 준다. 용산 참사를 되새기게 하는 재건축 현장 또한 정치적이라기 보단 일상적이다. 이야기를 잘 녹여낸 감독 덕이다.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어 영화 시장에서 축출되었던 이경영의 등장 신 경우 여러 해석을 낳게 한다. 대사는 없고 눈빛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뛰어난 연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규정짓는 콘텍스트들의 미묘함 덕이다. 그 불편함이 영화를 읽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너무 불친절하다. 서사는 미친년 널뛰듯 왔다 갔다 하고 인물의 감정선을 헤아리기엔 삶의 포개짐이 얇다. 발신 번호 서비스가 생기기 전인 시기에, 부재중 전화에 응답하는 이선균의 모습은 의아하다. 주어진 인물들의 삶도 잠시 훑고 지나갈 뿐이다. 주어진 콘텍스트가 미진하니 텍스트를 읽기에 버겁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릴만 하다.

영화는 ‘이리’와도 닮았고 ‘초록 물고기’와도 닮았다. 물론 이러한 몇 개의 교집합이 그녀를 작가주의 감독으로 추어올리는 요소는 아니다. 오히려 관객의 능동성을 이끌어내는 화면의 깊이와 불친절함이 그녀의 이름을 드높일 것이다. 삶을 살아가기도 힘겨운 세상에 그것을 반추하란 말은 지식인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수한 오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 정도의 오만은 감내해 줄 법하다. 하물며 근사한 풍경과 투박함을 가장한 세련됨으로 말을 붙이는 박찬옥이기에, 마음을 기울일만하다. 나 또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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