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여섯 달 전에 읽었고 하나는 어제 읽었다. 둘의 결은 비슷하다. 그의 삶과 고민이 골자다.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 ‘고민하는 힘’은 직접적이고 ‘청춘을 읽는다’는 간접적이다. 존재론적 고민과 시대에 대한 고민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다. 두 책은 나스메 소세키의 이야기와 막스 베버의 책을 통해 자기 삶을 반추하며 진행된다. 일본의 국민 작가라지만 국내엔 익숙지 않은 소세키이기에 그 닿음이 살갑진 않다. 그래도 지그시 받아들일 정도는 된다.
다만 그런 고민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 될 진 의문이다. ‘책 읽는 밤’에서 철학자 탁석산은 고민이 보이지 않는 책이라며 위 책을 폄하했다. 그의 고민거리라고 해봤자 재일 한국인이란 정체성과 자본주의, 일본의 미래에 대한 고민인데 유한계급(有閑階級)이란 신분과 도쿄대 교수라는 지위는 고민을 하나로 레저로 보이게 한다. 인문학이란 원래 어려워야 하고 인문학 자체의 힘은 그러한 힘듦을 뚫고 나오는데 있다. 이런 연성화된 책을 시쁜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자기 계발서와도 비슷한 홍보문구 또한 책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편집도 독자에 대한 배려보단 아름다움에 치중한 듯하다. 표지 디자인은 좋지만 전체적 편집이 헐겁다. 책은 여백으로 가득하고 각주가 아닌 주석을 뒤 페이지에 몰아넣은 건 가독성을 떨어트린다.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는 부분은 글을 생동감있게 하나 제 생각을 읊조린 부분에선 공감하기 힘들다. 제 작은 아버지가 서울의 매우 부자였단 사실을 기술하는 부분에서도 그의 관심은 서울의 척박한 환경에 쏠린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향수, 문화적 심미안같은 것들은 불안이란 실존적 감정이 제거되고 난 뒤에야 스멀스멀 올라오는 여분의 것이다. 요즘은 불안은 하나의 좌표에 의지하여 이겨낼 만큼 단선적이지 않다. 고민의 결과물이 여윈 탓으로 이 책은 누군가의 불안을 다독일 진정성이 부족해 보인다. 제 청춘에 관한 과한 나르시시즘만 미만하다.
로쟈님이 책 후기에 서평을 써 주셨다. 고운 말로 이 책의 헐거운 부분을 메우려고 하나 텍스트 자체의 미진함을 극복하긴 힘들다. 오히려 로쟈님의 서평이 책 자체보다 좋다. 재일 한국인의 성장기는 ‘고’라는 영화를 통해 익히면 되고 실존에 관한 고민은 좀 더 진지한 책을 읽고 생각을 벼릴 일이다. 일상의 잗다란 근심도 해결하지 못하는 대중에게 다소 외로된 고민은 야위어 보인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