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유시민씨가 책을 냈다. 얼마 전 백분 토론에서 인자한 모습을 보여준 유시민이다. 글 또한 그런 아취(雅趣)를 풍길지 궁금하였다. 전반적인 인상은 ‘그렇다’라고 할 수 있다. 책에 대한 분석보단 자신을 돌아보는 글이 많았고 그 고백의 언어가 마음을 따스하게 해줬다.

 책은 그의 젊은 시절을 견디게 했던 14권에 대한 소회(所懷)와 현재를 되돌아봄이 주 내용이다. 헌데 이 책에서 언급하는 책 중 읽어 본 것은 2권 밖에 없다. 사기(史記)와 광장. 그렇다고 내 불민함을 탓하기엔 과거의 책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유시민이 이야기한 세 편의 러시아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러시아 역사가 응축된 그 날것의 어휘와 호흡하고픈 마음에서다. 이와 달리 베블런이나 헨리 조지의 책은 중간 과정과 결론만 알면 될 듯하다. 맬서스와 다윈의 책은 결론만 파악해도 된다고 본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란 책에서 말했듯 세상엔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 참 많다.

 이 중 리영희씨의 책을 선택한건 잘못된 거라며 조선일보가 유시민씨를 한번 깐 적이 있다. 지나친 좌편향은 옳지 않다며 지면으로 불편함을 내비친 것이다. 그 불편함이 어디서 기인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유시민 본인이 영향을 받았다는데 그리 민감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아니면 그들에게 리영희란 역린(逆鱗) 같은 민감한 대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유시민은 14권의 책 중 에리히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최고의 책으로 꼽았다. 이 책은 유시민에게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개안(開眼)의 기적을 일으켰고, 어느 정도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한다. 역사뿐 아니라 사람의 언어나 행동을 살필 때도 그 상황과 콘텍스트를 살펴야 한다는 가르침도 부가적으로 가르쳐 준 듯 보인다. 헌데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 책은 묘하게 유시민이 정치를 하던 시절을 옹호하고 있다.

 우선 헨리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이야기하며 참여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면죄부를 주려 한다. 토지에만 세금을 매기는 이상적 세제(稅制)안을 내놓았던 헨리조지였다. 이런 몽상가적 기질을 옹호하며 토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걸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허나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의 말마따나 경제에 상존해있는 투기적 경향과 경제 참가자의 심리를 간과한 참여정부의 실책 탓이 크다 할 수 있다. 종의 기원에 대한 회고에서도 지난 세월을 옹호하는 듯 보인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의 필요악(必要惡)적 성격을 말하며, 신자유주의를 통해 경쟁을 심화 시켰던 지난 정부의 선의(善意)를 주장하는 듯하다. 헌데 적자생존이란 말은 허버트 스펜서가 사회적 진화론에서 말한 개념이지 다윈이 주창한 개념이 아니다. 이 책의 인용구에서도 이 부분은 드러난다. 유시민은 사회적 진화론과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모호한 경계 설정을 통해 의미를 확대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이러한 과잉 경쟁 사회는 다윈이 말하던 세상과는 다른 양태라는 거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책을 통한 말은 더 직접적이다. 이런 노골적 옹호를 한데는 분명 제 글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테다. 유시민은 이 부분에서 보수언론에 대한 불편함을 명확히 드러낸다. 소설 속 사례와 현재의 사례의 교점을 잘 찾아 스스로의 말에 설득력을 배가시키는 영리함도 보여준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카타리나 블룸을 병치시키는 부분에선 독자를 빨아들이는 강한 흡인력도 보인다. 좀 더 처절하고 집요하게 자신의 울분을 표할수도 있었겠지만 침착한 말투로 제 주군을 옹호하고 시대의 야만을 증오한다. 이런 침착함이 글의 설득력을 배가 시켰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싶단 생각이 강하게 들게 했다.

 말을 날카롭게 벼리고 무사처럼 휘두르던 유시민이었다. 임을 보내었지만 한층 웅숭깊어진 그의 마음이 이 책을 통해 한층 강하게 다가왔다. 그 살가운 다가옴에 대한 반응이 독서로 드러나려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시작으로 말이다. 일주일 전 로쟈님 서재에 가서 어느 판본이 좋은 지 물어 본 뒤 이 책을 지인에게 선물했었다. 친한 지인이니 그가 다 읽으면 내가 읽을 것이다. 이렇듯 이 한권의 책은 다른 책 14권을 한 번에 읽는 효과를 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책에서 언급한 9권 정도의 다른 책을 직접 읽고 싶게끔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유시민이 가진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예전 글을 읽고 다른 글을 풀어내면서 마음을 눅이고 스스로를 달랬을 테다. 그는 참 좋은 필자고 지식인이다. 그의 정치 행보도 이 책처럼 따스하고 겸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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