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 - 유가에서 실학, 사회주의까지 지식의 거장들은 세계를 어떻게 설계했을까?
황광우 지음 / 비아북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세상은 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 공통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영어는 교통어(交通語)로써 충실한 역할을 하고 있다. 법 또한 영미법과 대륙법으로 나누어진다. 삼권분립의 원리는 몽테스키외의 사상에서 출발하였고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터넷의 공용어는 영어고 서양 중심의 노벨상엔 동양이 더 환호를 보낸다. 오리엔탈리즘이니 옥시덴탈리즘과 같은 말이 난무하지만 이게 현재의 판세다. 선덕여왕의 김춘추가 이야기 했듯 판세를 읽는 건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보다 수월하고 또 명징하다.

 이 책은 동양과 서양의 배분을 5:5로 하였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는 시도였는지,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결과인지는 필자만 알 테다. 이러한 중립성 덕에 책은 소구(訴求)력을 갖지 못한다. 기계적 중립성은 세상을 올바로 갈무리 하지 못한다. 결국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알기 위해선 서양의 이데올로기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기우뚱한 세상에서 치우침이 아닌 올바른 균형이다.

 무엇보다 동양 사상들은 고루(固陋)한 과거의 것이거나 그 영향력이 지엽적이다. 유가와 도가, 법가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결과물이고 이러한 사상은 오롯이 도그마가 되어 동양의 근대를 지배했다. 서양과 달리 도그마가 타파되거나 새로운 사상이 이어 나가지 못했다. 오히려 도그마에 대한 해석만 달라지고 과거에 대한 희원(希願)만 강해졌다. 맹자에게서 민주주의를 읽고 법가에서 현재의 법치를 읽는다 하나 다 견강부회(牽强附會)다. 현실과 닿지 않는 과거 이야기가 너울대다 보니 책의 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건 서술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필자는 과거 사상을 소개할 때 왕과 신하 중심의 프레임을 차용한다. 대중은 없고 위정자(爲政者)와 지식인만 난립한다. 개인중심의 사상 서술이 갖는 한계일수도 있지만 사상은 대중의 지지를 얻었을 때 그 힘을 발휘한다. 대중이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필요가 아닌 위정자의 정치적 목적이 강제한 측면이 강하기에 현 세계를 이해하자는 필자의 의도와 참으로 사맛디 아니하다. 그러한 사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부가적 설명이 따르나 미진하다는 데서 별 차이가 없다.

 서양의 사상을 논할 때도 너무 훑고 지나친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설명을 위해선 책 한권 분량을 다 써도 모자랄 판이다. 헌데 배분의 공정성에 집착한 탓인지 10분의 1만 사용했다. 좀 더 깊은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에겐 수박 겉핥기식 미진함을 남겨 줄 뿐이다. 역사라는 큰 줄기를 사상사로 읽어내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교과서 수준의 원론적 이야기가 난무하여 딱히 재미가 없다.

 고민을 덜한 느낌도 든다. 잔다르크가 말했다는 ‘프랑스를 구하라’라는 말에서 민족주의의 발현을 알 수 있다는 설명이 너무 나이브하다. 서양에선 30년 전쟁 전까지 영토 국가의 개념은 부재했다고 보아야 하며 민족주의도 나폴레옹 전쟁 이후 대두했다는 게 정설이다(물론 이러한 설명이 간단히 나오긴 한다). 오히려 후세 민족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프레임으로 잔다르크의 언어를 변용(變容)게 아닌지 살필 일이다. 무엇보다 잔다르크가 활동했던 중세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활발했다. 그녀가 하느님의 계시(啓示)를 받고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녀의 행동 동기가 국가가 아닌 신이 내려준 소명 때문이라 보았을 때, ‘프랑스를 구하라’라는 말은 후세의 창조물일 결과가 높다.

 글을 쓰다 보니 대중적 이야기를 지향한 필자의 의도가 내 까칠함 때문에 지나치게 폄하되는 듯하다.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다보니 정치(精緻)하지 못한 해설이 눈에 걸려서 일 테다. 무엇보다 황광우 씨는 시인 황지우 씨의 동생으로서 세상과 부딪히며 공부에 매진하신 분이다. 황광우 씨를 좋아하는 지인이 빌려 준 책을 빌려 읽었는데도 이런 선소리나 해대는 거 보면 난 참 많이 부족한가 보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글을 쓰다 보니 문장도 섞갈렸다. 시간의 세례를 받아 정치한 문장이 밀려 나와야 하는데 급한 마음이 성긴 글을 남기고 말았다. 그래도 황광우씨가 조금 더 고민해서 글을 썼으면 한다는 사족(蛇足)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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