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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미술관 -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 ㅣ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9월
평점 :
간만에 막걸리를 마셨다. 급하게 마시고 많이 마셨더니 스스로를 주체 못하기 시작했다. 여투어 둔 개념어가 튀어나오고 같잖은 애드립이 남발했다. 그건 함께한 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전까지 분위기는 괜찮았다. 후배 한명과 철학 박사 한명, 이렇게 셋이서 먹었기에 그제 있었던 대통령과의 대화나 시국에 대한 말로 꽤 생산적이 말이 오갔다. 박사님은 진중권과 강준만을 개인적 연분으로 안다 하였으며 진중권의 공격성에 대한 찬사와 예의 없음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나또한 평소 진중권의 언어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말을 이어 붙였다. 또 그의 ‘미학 오디세이’와 같은 책은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하는 일종의 ‘구별짓기’식 언어의 성찬이며 과한 레토릭으로 존재증명하려는 지식인의 인정 투쟁이란 사견(私見)을 덧붙였다.
후배는 ‘구별짓기’나 ‘존재증명’과 같은 언어 또한 자신을 드러내려는 인정 투쟁의 하나로 비친다며 내 미욱함을 탓했다. 선배 또한 나나 진중권이나 별 차이가 없다며 장난 섞인 타박을 가했다. 후배는 기실 내가 자주 쓰는 이러한 어휘가 종종 불편했었다는 고백도 덧붙였다. 내 불민함을 알기에 스스로를 벼리기 위해 이런 말을 쓴다며 되받아치니 그는 정도가 지나치다며 다시금 내 언어를 짓눌렀다. 취기가 올라와 있는 상태인데다 감정싸움을 하기 싫었기에 나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헌데 그 아이의 언어가 밤새 내 머리를 맴돌았다. 덕분에 잠은 오지 않았고 책을 읽었다. 이 책 ‘지식의 미술관’ 말이다.
이주헌의 글은 쉽다. 기자출신답지 않게 문장은 다소 길지만 섬세하고 꼼꼼하다. 진중권의 ‘이매진’이란 책에서 느꼈던 불친절함은 없다. 이야기는 하나의 키워드에 대한 해설로 시작해 그와 관련된 그림에 대한 설명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상술로 이뤄진다. 한겨레신문에서 기고했던 내용과 교집합도 많았지만 여집합의 푼푼함이 그 교집합을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했다. 신문에 쓴 글이 책으로 묶여 나오려면 이 정도 손봄은 거쳐야 한다고 본다.
책에서 나오는 키워드들 중 인상 깊은 것은 다음과 같다. 데페이즈망, 트롱프뢰유, 게슈탈트 전환, 왜상, 키아로스쿠로, 쿤스트카머, 베두타, 빅토리안 페인팅. 단지 하나의 개념에 불과한 상징어가 이주헌의 손을 빌려 살아있는 언어가 된다. 역사와 사회적 상황에 대한 충실한 설명은 그림을 더 가까이 느끼게 만든다. 예전 루브르를 가기 전에 미술 관련 서적을 스무 권정도 읽은 적이 있는 데다 후에도 꾸준히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가졌지만 이 책이 가장 많고 유익한 이야기를 담은 듯하다. 다만 상당히 밀도 있는 어휘를 많이 쓰기에 이 분야에 관심이 덜한 사람에겐 보충 공부가 필요해 보인다.
어제 술자리 덕에 나는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다. 결론은 지금의 내 부족함이 과거의 어떤 내 모습보다 사랑스럽다는 거다. 현학적 어휘와 잔망스러움이 묘하게 공존하는 게 지금의 나다. 부족함을 채우기 보단 나를 죄고 있던 구접스런 구속들을 버리며 지금의 내가 된 듯하다. 이주헌의 글 또한 그렇다. 지금의 글이 과거 이주헌의 어떠한 글보다 더 좋은 글일 테다. 이주헌의 지금 글은 제 자신을 살찌우기 위한 노력이 누적된 결정(結晶)이다. 이 책은 그가 시간을 허랑히 보내지 않았음을 오롯이 증명한다. 나또한 다사다난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가 아닌 들국화의 ‘행진’처럼 나는 나의 과거를 사랑하며 오롯이 내리는 비를 맞을 테다. 그렇다면 내 인생 또한 이주헌의 책처럼 자랑스레 읽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