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활자(活字)만으론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마뜩찮을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영상은 매우 근사한 존재다. 활자보다 상상력은 부족하지만 영상이 주는 그 명징한 이미지 앞에서 사람들은 실제와 같은 영혼의 진동을 느끼곤 한다.
최근 정부에선 낙태 금지 의지를 강하게 표방했다. 근본주의가 판치는 중세도, 기독교가 위세를 떨치는 미국도 아닌 한국에서 이러한 의지는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경제활동인구를 늘리기 위한 방편이라 하나 개인을 국가의 부속물로 여기는 전체주의적 관점은 소산이라 할만하다. 다만 이들은 자신의 미욱함을 스스로 돌이켜보기 어려운데다 말로 닿지 않는 논리를 펼치고 있으니 영상으로 가르침이 정답이겠다.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을 추천한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그 명성이 가장 높은 칸 영화제에서 그것도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니 불민한 자들의 못난 영화라는 가당치 않은 논리를 들이대기도 어려울 테다. 영화는 낙태가 금지되어 온갖 수모를 겪는 두 여인에 관한 이야기다. 인구를 늘리기 위한 루마니아 정권의 억지가, 사람을 얼마나 비루하게 하는 지 가르쳐 준다. 1987년이 배경인데 사실적 영상 때문에 실제와 같은 충격을 준다. 낙태 암시장이 형성되어 필요 이상의 돈이 들어가고 안전하지 못한 수술로 인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는 두 여인을 보면 온당치 못한 공산 정권의 횡포에 짜증이 난다. 규제가 만능이라 여기는 루마니아 공산 정권에게서 어떤 기시감을 느끼는 건 어렵지 않다. 여성의 성기가 노출된다며 불편한 심사를 내비칠 이도 황금종려상이란 간판 앞에선 리얼리티가 살아있다며 격찬할지 모른다.

혹 영화를 보고도 심드렁할 수 있는 차가운 이성의 소유자들도 있을 테다. 영화가 전달하는 바를 이해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럴 땐 책 한권을 권한다. 스티븐 레빗의 ‘괴짜 경제학’이다. 이 책은 90년 대 후반 미국의 범죄 발생률이 줄어든 이유로 60년 대 쯤 낙태가 양성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랄 소지가 큰 아이가 낙태를 통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는 거다. 윤리적 문제가 있을 순 있으나 정부 관계자가 좋아하는 단순 경제적 효율을 감안하고 보았을 땐 낙태를 합법화 하는 게 경제에 더 이익일 테다. 그럴 듯하다. 시장 경제주의자라는 사람들이 경제적 유인책이 아닌 단속을 통해 소비자효용을 저해하려는 건 모순이다. 무엇보다 ‘넛지’라는 책을 MB께서 널리 권유한 바가 있거늘 이러한 강제적 규율 강화는 그들의 섬김에 모자람이 있다는 방증(傍證)이다. 읽은 책 수량이 아니라 그 책을 얼마나 제 것으로 소화했느냐를 측정한 지표라도 만들어야 할 듯하다.



‘애정 만세’로 1994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 차이밍량은 “광폭한 현 세대를 살아가기 위해 영화는 동시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치유제”라는 발언을 한적이 있다. 현 정부에게는 독서와 영화, 둘 다 필요한 듯하다. 그들의 오판은 자신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불행하게 하기에 그렇다. 제발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지 말자. 사회적 진화론에 충실한 MB 정부가 가끔 보이는 구태(舊態)는 중도실용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오늘 국민과의 대화도 한다는데 제발 마음과 귀를 열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길 바란다. 아니면 영화라도 몇 개 보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