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시험이 있다. 가벼운 시험이지만 마음은 무겁다. 시험 전날은 이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 방황하곤 한다. 여기서 방황이란 늦잠을 자거나 우두커니 티비만 보는 현상을 말한다. 놀자는 친구의 재촉도 한번 보자는 지인의 연락도 시험이란 이유로 거절한다. 그리고선 밀실에서 침강한다. 굳이 번잡하지도 않은 하루인데 마음은 애먼 데만 두드리곤 혼자 쉴 곳을 찾는다. 공부도 놀이도 다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오늘 하루도 다 지난 거다. 왠지 아쉽다.

덕분에 몇 곡의 음악을 들었다. 생각은 단정한데 마음이 번잡하니 브루크너가 좋을 듯했다. 평소 한 번도 집중해서 듣지 않았던 3번과 6번 또 9번을 듣는다. 명상에 적합한 선율이 흐른다. 듣다보니 유장한 흐름은 졸음을 유발하고 성긴 멜로디는 집중력을 저해한다.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하지만 낼 셤을 두고도 허랑히 보내는 마음이 여투어 둔 씀씀이가 있을 리 만무하다. 또 다시 다 듣지 못하고 설핏 잠이 들었다.

선잠은 깨었지만 음악은 계속된다. 보통 풋잠이 깨고 나면 정신이 명료해지기 마련이다. 헌데 브루크너는 사람을 대중없이 수마(睡魔)에 빠트린다. 잠을 이기려 딴 생각을 한다. 얼핏 든 생각은 브루크너가 바그너보다 더 독일스럽지 않냐는 잡념이었다. 독일스럽다는 느낌은 히틀러가 이야기한 아리안적이면서도 헤겔의 절대정신이 응축돼 있는 사상이라고 본다. 헤아림이 모자라니 이런 편파적인 생각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리고선 과한 관현악과 두터운 오케스트라가 공간을 메운다. 그러다 또 졸았다.

친구가 전화가 왔다. 잠이 깼다. 친구 이름으로 예약한 책이 학교 도서관에 도착했단다. 알바비로 산 패딩 점퍼를 거치고 밖에 나선다. 10만원이 넘게 들었다. 뿌듯하다. 브루크너는 계속 울리고 있다. 물론 중간에 음반을 몇 번 갈아 끼우긴 했다. 브루크너 음악은 오르간 연주를 연상시키고 슈만은 피아노 소나타를 연상시킨다는 데 브루크너의 특정 교향곡은 유독 지겹다. 4번과 7번외에 전곡을 다 들어 본 기억이 없다. 물론 4번과 7번은 매우 좋아하는 교향곡들이다. 카라얀의 말년 연주가 특히 마음에 든다.

오늘 하루는 첼리비다케의 브루크너 교향곡 같이 느적느적한 하루가 될 듯하다. 그래도 어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마음은 슬겁다. 그 따스함을 안고 발을 뗀다. 김연수의 글을 빨리 읽어야겠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할 계절이 사위어 간다. 조금 더 마음을 재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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