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떠난 사람이 그립다. 애써 잡으려 했던 망상들은 거추장스럽다. 불신시대의 많은 말은 짙은 나약함을 상징할 뿐이다. 어제는 한껏 멋을 내고 길거리를 활보하였지만 알아주는 이가 없더라. 귓불에 가시가 박힌 듯 화끈거렸다. 믿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를 추스르곤 다시 걸었다. 하늘이 푸르고 높았다. 흉 족은 겨울양식을 위해 중원을 습격했다는 데 한국의 가장들은 지난한 삶을 위해 제 삶을 침범한다. 삶이 무엇인지 아는 건 사치다. 아니 고역이다. 그저 묵묵히 세상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남보다 조금 더 열심히 살면 된다.

 기실 말이 쉽다. 남보다 열심히 사는 건 매일 아침 7시에 눈을 뜨는 것보다 어렵다. 나와 남은 다 스스로를 총애하기에 타인 위에 서고프다. 같은 욕망이 부딪히니 살이 패이고 피가 튄다. 그럴수록 승리에 대한 욕망은 집착으로 변한다. 다들 이런 집착이 자본주의를 살찌우고 그대를 살찌운다며 부추긴다. 싸움을 해 본 이는 알겠지만 눈이 뒤집히면 차후 사안은 걱정거리도 아니다. 그저 물어뜯고 몇 번 더 때리는 게 우월전략이다. 죽음과 맞닿은 그 치열함은 간헐적인 전투를 통해 일상이 되고 관성이 된다. 누군가는 승리자가 되고 누군가는 패배자가 되어 몇 덩어리 빵을 들고 귀가한다.

 자본이 인간을 옮아 매는 방식도 치밀해졌다. 다들 스스로 손톱을 다듬고 이를 날카로이 세운다. 아니 이빨을 날카로이 한다. 그대들은 모두 짐승이다.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 사보타주를 일삼거나 고담준론을 일삼다간 초식동물만도 못한 비루한 신세가 된다. 살점이 뜯겨 나가고 동맥이 끊어져도 이 싸움은 멈출 줄 모른다. 제 자식 볼에 상처하나 날 쯤에야 세상을 향해 독한 멘트 몇 번 날리고 나약한 자신을 반성한다. 그야말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임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고 누군지도 모른다. 단지 공포의 채찍질이 두렵고 욕망이 주는 당근을 따먹으려고 나아간다. 뼈를 드러내며 빵을 구걸하는 이는 남은 뼈마저도 팔아야 한다. 죽은 이를 위해 흘릴 눈물은 곱상한 쟤네들이나 하는 짓이고 집 한 칸 없는 이는 실컷 웃어야 한다. 뒤쳐진 자를 바라보며 짓는 웃음이야 말로 삶의 원동력이다. 섹스보다 탐스럽다.

 수백 명을 죽였지만 그대 뒤엔 시체가 없다. 자본은 그대에게 갑옷과 방패와 칼을 제공해 주고선 시체를 앗아갔다. 문제는 시체가 뒤에 있다고 여기는 그대다. 그 전리품이 성 하나쯤은 쥐어줄 것이라 믿는 다는 거다. 망상이다. 뒤돌아보라. 아무 것도 없다. 혹 자본이 자비가 아닌 성긴 면을 보여주어 몇 구의 시체를 남겨줬다면 냉큼 챙겨라. 밤은 짧고 낮은 길다. 이 밤에 무엇을 하지 않고선 저 시체를 다 뜯어 먹어 네 뱃속을 채우지 못한다.

 혹 문화적 욕구가 샘솟는다면 암컷을 찾아 몸을 맡겨라. 문화는 그대의 천박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유해한 상품이다. 부르주아 계급들이 가지고 놀다 지친 찌꺼기조차 네 구접스런 삶을 더 묽고 퍽퍽하게 할 것이다. 암컷은 수컷에게 가랑이를 벌리고 수컷은 암컷에게 제 능력을 발산하라. 쏟아지는 육체의 유희 속에 그대들의 벌어진 상처는 약간 아물고 헝클어진 머리는 봐줄만한 모양새로 정돈 될 테다. 너무 서로의 몸을 탐하진 말지어다. 자본의 칼날이 더 매서워진 근자엔 감각의 제국마냥 서로의 뿌리를 채취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낮을 낮 삼아 밤을 낮 삼아 자강불식 하면 네 몸에도 성수가 뿌려질지 모른다. 그때서야 그대는 보일테다. 지난한 전투를 일삼는 좀비 무리들의 덧없는 일상을. 참고로 이 글은 18 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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