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글쓰기 스터디를 같이 했던 형이 있다. 그는 키가 크고 잘생겼다. 한 때 모델로 활동했었다. 헌데 그의 눈은 외로워 보였다. 소통을 갈망하지만 닿을 수 없는 세상에 지레 마음을 닫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가 궁금했고 자주 질문을 했다. 그의 답은 사변적이었지만 확신에 차 있었고 말과 말 사이엔 철학자와 교수들이 너울댔다. 나는 그와 얘기하는 게 좋았고 조금 다른 그를 좀 더 관찰하고 팠다.

 어느 날 그는 스터디를 홀로 파하고선 소식을 끊었다. 원래 소소한 말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다보니 자연스레 버성기고 멀어졌다. 그런 그를 오늘 만났다. 그는 자신의 앞날에 대한 짧은 불안과 삶에 대한 긴 성찰을 말했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확신에 차있었지만 몇몇의 말은 마음에 닿지 않았다. 공허한 말 속에 치열한 삶을 실어내려는 둘의 대화는 그렇게 엉키고 무거웠다.

 많은 말을 하고 속을 비워 냈지만 마음은 둔탁했다. 말을 파헤치며 생의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시도가 버거웠다. 맞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은 서로가 알고 있었다. 좁히려는 시도도 늘이려는 시도도 없었다. 단지 오고가는 묵직한 사유의 언어들은 진솔했기에 낯설고 날것이기에 차가웠다. 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는 음악 이야기를 하였으나 언어로 세속화된 음악은 대화를 더 침강시키고 공기를 짓눌렀다. 말은 잇달아 벽에 부딪혔고 머리는 더 적확한 말을 위해 벼리고 또 벼려졌다.

 훗날을 기약하며 한 시간이 넘는 대화를 끝냈지만 사유는 초라했고 잗다란 생각은 끝없이 이어졌다. 믿지도 내팽개치지도 못할 시간이 가을밤을 채웠다. 말의 밀도는 생각보다 가볍고 긴 말도 하나의 생각조차 오롯이 표현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나는 외로웠다. 그는 이성복 시인의 글을 읽으라 했다. 그가 권해준 시인의 글을 읽으면 나아질지 모른다. 글로 풀어내니 말이 더 사변적이고 공허하다. 이 무질서함을 감내하기 위해선 나만의 뮤즈가 필요하다. 그 애가 그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