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이 좋아 거리를 쏘다녔다. 가을의 스산함보단 낮의 청신함이 거리에 미만해 있었다. 너붓거리며 떨어지는 은행잎을 바라보며 발이 가는 데로 몸을 맡긴다. 자늑자늑 발을 옮기는 행인들 사이로 범박한 생각이 머리를 메운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푸념하고 다니던 근천스런 어제가 떠오른다. 승하지 못한 재주를 탓해야겠으나 나보단 남을 탓하는 일이 더 수월하다.

이젠 이렇게 마음을 눅이고 다닐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터. 번잡스런 기억만이 공간을 채운다. 어제 꽤 괜찮은 회사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퇴짜를 놓았다. 지난한 시간을 들여 채운 나의 존재증명이 하잘 것 없는 메일로 거부당했을 때, 순간의 불쾌함을 어찌할 수 없다. 또 다른 실패한 무리와 함께 상처를 핥으며 아픔을 짓누른다. 따스한 겨울은 마음만으로 맞이할 수 없기에 하나의 존재 증명이 담을 넘어 겨울의 양식이 되길 바란다.

마음이 온전치 못하니 글이 수활하다. 글 짓는 일을 기꺼워하고 밥 짓는 이를 청안시하던 베짱이의 겨울은 다습지 못할 뿐이다. 허나 겨울 들머리에 추위에 파들거리더라도 마음만은 실팍했으면 한다. 아직 눈이 내리지 않은 서울의 가을엔 낮보다 밤이 눈부시다. 오늘은 누구를 희원하고 또 푸슬푸슬한 마음을 다독일지 모르겠다. 김해경이 동경에서 멜론을 애타게 찾았을 때, 그 때의 마음이 소주처럼 썼을 테다. 잔을 기울이며 가을바람을 눅여줄 친구의 연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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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5 2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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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6 08: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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