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스스럽고 밀실은 음란하다. 마음이 가는대로 기억이 배설된다. 구접스런 말들이 가뭇없이 행해지는 밀실의 황홀함은 투르크의 할렘보다 더 매혹적이다. 덕분에 밀실에서와 광장에서의 서로 다른 자아가 생겼다. 광장의 나는 경박하고 주위 사람에게 쉬이 지분거리며 말은 재간둥이 마냥 톡톡 거린다. 밀실의 나는 침울하고 바닥으로 침강하지만 날카롭게 벼린 말을 쓰려 하고 적당히 성기고 그만큼 고백적이다. 밀실과 광장의 차이는 정신적 해리의 결과가 아닌 사회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의 구별 짓기며 호흡과 광합성의 차이만큼 다르지만 한 쌍이다.
가을이 시나브로 여물어가는 계절에 나는 자소서를 쓰지 않고 책을 읽었다. 하루에 한 권 꼴로 읽었으나 ‘인물과 사상’과 같은 월간지도 끼어있다 보니 독서의 존재증명은 지극히 암담하다. 다만 세권 정도 더 읽으면 올 여름까지 읽기로 했던 100권의 목록을 채우니 거짓 마음이나마 푼푼할 테다. 글은 신중히 읽고 마음은 허술히 여미는데 여투어둔 기억들은 일상을 침범하고 발품을 팔게 한다. 때 마침 창밖엔 비가 내리니 이런 허랑한 언어의 향연은 다 부질없어 보인다.
못내 가을이 아쉬워 들었던 음반을 다시 듣고 불렀던 휘파람을 다시 부른다. 내 도덕 기준이 높은 덕에 마음은 종종 핍진하고 사람과의 관계는 점점 사위어들지만 이 또한 겨울나기를 위해 나쁘지 않은 듯하다. 빛이 바랜 모니터의 외양을 지긋한 눈으로 바라본다. 아직 다 쓰지 못한 자소서만이 여백을 부유한다. 마음이 절로 가난하다. 던적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