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2시간 동안 스타 크래프트를 하고 왔다. 간만에 하면서 느낀 건 이제 스타를 끊어야 겠다는 거다. 스타를 하던 중 같은 편이던 넘은 나와 동맹을 끊고 나를 엘리 시켰다. 팀플전에서 나 혼자 3명을 밀어버리자 상대편 3명이 내게 육두문자를 퍼부었다. 덩달아 나도 욕을 했다. 카타르시스가 일어나긴커녕 짜증이 났다. 덕분에 다시금 마음이 강퍅해졌다. 마음을 진정 시키려고 호로비츠의 연주를 듣는다. 전설적인 차이콥스키 피협 1번과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그의 협주곡을 들으면 상당한 기교가 요구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도 난곡으로 유명하나 그리 어렵게 들리진 않는다. 연주하는 사람은 힘들지 모르나 듣는 사람은 오히려 박력있는 반주에 더 귀가 간다. 라흐마니노프는 다르다. 손으로 아무 건반을 누른다 하더라도 저 속도감을 따라오지 못할 것 같은 위압감을 준다. 데이비드 할프갓이 이 곡을 연주하다 정신이 나간 것도 이해할만 하다.  

 헌데 호로비츠는 이 난곡을 정확하게 연주한다. 반주가 따라오기 벅차다. 프란츠 라이너와 같은 거장의 반주 인데도 버거워 보인다. 몇 개의 미스터치가 있는 것 같기도 하나 또박또박한 음색이 자리를 메운다.  물론 작곡가가 피아니스트이다 보니 피아노를 돋보이게 하려 손을 썼을 테다. 헌데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처럼 노골적이지 않다. 라흐마니노프가 교향곡에도 재주가 있었기에 교향악 반주에도 신경을 써서 그럴 테다.  

 한 때 샤인이란 영화 덕에 이 곡은 매우 유명했었다. '악마의 곡'이라고도 불리었다. 헌데 악마적인 매력이 딱히 나타나진 않는 듯하다. 차이콥스키의 멜랑꼬리와는 또 다른 우울을 들려주는 라흐마니노프지만 이 곡에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충돌에 더 신경을 쓴 듯하다. 오히려 서정성이나 귀에 잘 달라붙는 익숙함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더 잘 드러난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오히려 라흐마니노프 인생 후반기의 황폐함과 잘 어울린다. 신경쇠약을 이겨내기 위해 다소 과격한 곡을 만들었지 않나 싶다. 물론 여전히 아름답다. 다만 이 아름다움은 라흐마니노프가 줬던 기존의 아름다움과 층위가 다른 듯하다. 특히 1악장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선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이 떠오를 정도로 관악기 소리가 우렁차다. 그 후 질주하는 피아노 연주는 '두드린다'는 표현이 절적하다 싶을 정도로 격하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은 지휘와 피아노 연주를 병행 한 친머만의 앨범이 있다. 번스타인도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지휘와 연주를 번갈아하며 청중을 즐겁게 해줬다. 헌데 라흐마니노프의 이 곡은 이러한 동시작업이 불가능 할 듯하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대립이 긴장감 있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혹시나 지휘와 연주를 병행한 음반이 있는 지 궁금하다. 글을 쓰다 보니 스타 크래프트를 하며 거칠어졌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헌데 호로비츠의 이 앨범은 안정 보단 경탄을 준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시디를 바꿔야 겠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정신 건강엔 그리 좋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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