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가 쓰고 싶었다. 할 말이 있는 건 아니다. 할 말은 없다. 그냥 일기가 쓰고 싶었다. 생각이 많았다. 많은 생각은 말이 되지 않았다. 행동이 필요했다. 그래서 꿈부터 꿨다. 가을이 다 가도록 꿈을 꾼다. 마음이 공허하다. 꿈마저 꿔 지지 않는다. 겨울이 돼야 잠이 드나 보다. 그래서 곰은 겨울에 자나 보다.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에서 봄날의 곰을 좋아한다 그랬다. 배두나도 그랬다.
다시 양을 센다. 하나. 둘. 셋. 꿈은 미타찰에서 도 닦을 날 기다리는 제망매가처럼 소실됐다. 소멸했다. 가뭇없이 사라졌다. 마음만 성기고 분위기만 버성기다. 가을이 익어 겨울을 맺으면 봄이 툭 하니 떨어진다. 그리고선 여름에 썩는다. 여름은 상실의 계절. 그래서 난 지난 여름에 밤을 노래하며 보조개를 지었나 보다.
마음껏 쓰니 마음이 놓인다. 로르샤흐 테스트 마냥 윗글을 잘게 나누어 보는 것도 좋은 여흥 수단일 테다. 내가 마음을 의탁하던 지인이 잠시 내 곁을 떠난다. 축하를 하지만 서글프다. 얼굴은 웃지만 마음은 시리다. 1년을 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친구였다. 그 많은 이야기가 방울처럼 알알이 맺혀 그 아이의 바람을 영글게 했다. 어딜 가든 푼푼할 친구다. 더 야물게 여울져 쉬이 부서지지 않는 보석이 되길 바란다. 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친구야. 그대가 세상에 빛이 되는 데 열중하도록. 그대의 회사도 예전의 명성을 찾길 바란다. 난 가을이니 수확을 준비할 테다. 겨울을 위해 쟁여 둘 잗다란 낟알 말고, 삼대를 먹여 살릴 큰 농장을 이루겠다. 땅을 파서 먹고 사는 일이 있더라도 아직 내 바람은 북극성처럼 굳건하다. 그럼 벼를 타작할 때 보세나. 마음만큼 마음을 주지 못해 쌀이라도 나중에 쥐어 줘야겠다. 그러려면 만석꾼은 안 되더라도 천석꾼은 되어야 할 듯. 다만 찰진 쌀이 쉬이 부대에 담길 수 있게 조그마한 기도 하나나 해주시게. 그걸로 충분할 듯 하이. 언제나 처음 그댈 본 그때처럼 여유 있는 미소 짓게나. 아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