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본 책들을 애써 모아 봤다. 소설을 꽤나 많이 봤단 생각이 든다. 경제학 서적도 몇 권 눈에 띄고 자기계발 서적도 몇 권 있더라.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남경태 씨가 쓴 '역사'다. 덕분에 세상을 홑눈이 아닌 겹눈으로 보게 됐다. 아니 겹눈이 더 치밀해졌다. 다 덕분이다. 

 100권을 채우지 못한 건 내 게으름 탓일 테다. 이런저런 무리와 섭슬린 탓도 있을 테다. 영상을 좋아하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에 몰두한 탓도 있을 테다. 다 변명으로 들릴 테다. 내가 나를 객관화 하자면 그럴 테다. 스타크래프트 탓도 있을 테다. 어쩌면 그게 가장 큰 듯하다.

 요즘 서정주 시인이 좋아졌다. 그의 시구를 곱씹으면 알싸한 환각이 든다. 저리 무뎌지는 가슴을 지필 수 있는 글귀를 남기고 싶다. 그의 시를 말로 읊는다. 잔상이나마 남기려 그런다. 친일행각이란 과오도 문장을 더럽히진 못하다. 푸르트뱅글러와 카라얀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그의 비겁함도 그리 거슬리지 않는다. 다 내 구접스런 성정 때문이다. 서정주의 글귀가 아기처럼 눈에 박힌다. 지금도 울린다.
참고로 그는 자신을 ‘종천순일파’라 했다. 말이 많으니 애처롭다. 먹먹하다. 나름 곡진한 사연으로 끌탕했을 터. 뒤태가 방불히 눈에 밟힌다. 허랑하다.

 동아일보에서 연재하는 걷기에 관한 시리즈는 참 좋았다. 제주도에서 느낀 잗다란 덩어리들을 누군가는 말로 풀어 글로 쓰고 있었다. 글쟁이들이 좋다. 동아일보 또한 서정주마냥 때 묻은 무언가가 되었다. 그래도 동아의 경제면과 가끔 나오는 기획 기사가 좋다. 분석적이고 교양을 살찌운다. 사설에 나오는 단정치 못한 논리는 웃음을 준다. 칼럼에 나오는 방어기제의 드셈은 연민도 가게 만든다.

 그렇다고 매양 매도할 것만은 아닌 듯하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선배가 동아일보 기자라서 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내가 조중동의 프레임에 넘어갔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라고 단정 짓기엔 내 안에 자리 잡은 자잘한 매듭이 뒤엉켰다. 곱다시 가닥만 잡아도 한세월이다. 내가 나를 덜 알기에 타인의 규정에 한사코 손사래 치기 힘들다. 그리고선 나는 말한다. 조중동을 무조건 싫어하는 프레임 또한 그대의 무의식에 작용하고 있다고. 뭐 그러다 보면 논쟁은 끝이 없다. 내가 말을 아끼거나 상대가 화를 내버리기에 그렇다. 그렇다고 진실로 성실한 지식인 앞에서 말할 계제는 아니다. 바람구두님이나 드팀전님 같이 내가 우러러보는 분들이 실로 저어하는 모양을 보면 내가 잘 몰라 그럴 수도 있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그러면 모자란 내 마음도 조금은 푼푼해질지 모른다. 그리고선 이내 맘 다습해진다. 바투 다가앉아 그대 허벅지를 벤다. 비 기다리는 천수답에 물을 붓는다. 그대 시린 허리로 내게 마중물만 부어 주오. 파르르 떠는 가슴은 이미 네 것이 아니다. 칼로 도려내도 다 지워지지 못할 날이다. 우듬지에 걸린 해처럼 다 가뭇없이 사위어들 핏물이다. 바지런히 감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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