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조바랑 영국 여행을 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낯선 공기와 낯선 풍경들 속에 묘한 쾌감이 혈류를 관통하던 그 햇살 가득한 날은 아마 하늘이 내게 준 선물이였으리라. 유럽에서 받았던 많은 영감들과 깨달음을 페이퍼 형태로 적으려 했었지만 귀국직 후 들었던 아버지 소식에 나의 감상은 사치가 되버렸다.
그때 경흠이 아버지가 케이티 엑스와 무궁화를 타고 왔던 나와 경흠이를 데리러 오셨다. 유럽에서 도착한지 얼마 안된 몽롱함과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있었지만 약간의 서운함도 있었다. 왜 우리 아버지는 날 데리러 안오셨을까? 경비도 다 경흠이네 집에서 부담했는데 이런건 좀 신경 써주시면 안되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경흠이 아버지는 약간 피곤해 보이셨다. 그렇게 오피러스를 타고 갔다. 경흠이 아버지는 우리집에 가지 말고 아버님 집에서 밥을 먹자고 하셨다. 보름만에 귀국한 아들을 그리워할 엄마와 아빠 얼굴이 떠올랐지만 서로 다 헤아림이 있어서 그리한거라 보고 아버님 말씀을 따랐다. 경흠이 어머니께서는 갈비 구이를 해놓으셨다. 왠지 모를 무거운 분위기. 집에 안좋은 일이 있을것 같다는 예감이 자꾸 있었기에 불안했다. 왜냐하면 양 쪽 가족이 다 친하니까 같이 밥을 먹는 그림도 그려 본 상태로 경흠이 집에 당도했기 때문이다.
불길한 예감을 접고 나는 보름만에 한국산 쌀을 입에 넣었다. 약간 텁텁한 느낌이 드는게 외국 음식에 익숙해진 내 입맛 때문은 아니였으리라. 경흠이 어머니께서는 밥을 빨리 먹고 어딜 가자고 하셨다. 아버지가 아프시다며. 별로 크게 아프신건 아닌데 일단 밥먹고 같이 병원에 가자고.
순간 그릴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운명에 쉽게 순응하는 편인지라 왠지 모를 분노도 희망도 없었다. 그냥 그 최악의 시나리오가 맞을것 같다는 직감만이 강하게 들 뿐. 그리고 도착한 병원에는 친지가 다 모여있었다. 엄마도 울고 누나도 울었다. 삼촌도 울고 종국이 아저씨도 울었다. 나는 안울었다. 사태가 일목요연하게 짐작이 되기에 마른침을 삼키며 애써 의연한척 했다.
분위기가 주는 공기의 무게에 억눌린 나는 시차로 인한 여독을 호소하며 집에서 쉬어야 겠다고 한다. 도망침이다. 비겁하다. 아버지의 고통을 직시할 수 없는 약한 심장이 상황 회피를 택한다. 그리고선 경흠이 부모님의 차를 타고 집에 왔다. 눈물이 안난다. 왜 그렇지. 통곡해야 하는데, 너무나 아픈데 울기는 커녕 피곤하다. 잠을 자고 싶은데 잠은 안온다. 눈시울은 젖어 드는데 울어 제끼진 않는다. 그냥.. 그렇게..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놓인 주변인 마냥 몸을 추스리지 못한다. 조금 있다 엄마가 들어오셨다. 아빠가 암이란다. 말기란다. 모든걸 예상한듯한 나의 얼굴은 별다른 비애를 나타내지 않는다. 짐작되로구나..라며.
그리고선 유럽을 함께 다녀온 가방을 푼다. 술을 좋아하시기에 면세점에서 산 발렌타인 17이 제일 눈에 먼저 띈다. 이 무슨 아이러닌가 하다. 대장암 환자를 위한 발렌타인 17. 그분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 그분을 너무나 사랑하여 마음에 담아 드리고팠던 그 선물이 이젠 가슴을 저리게 하는 송곳같다. 아프다. 너무 아팠다. 그리고 엄마를 위해 샀던 향수 세트를 꺼낸다. 좋아하신다. 좋다. 이렇게 나마 웃을 수 있어서 좋다. 나보다 더 힘드실 텐데 내가 웃음을 줄 수 있어서 좋다. 누나한텐 스와치 시계를 줬다. 나름 고른 예쁜 시계라 그런지 누나도 잠시 얼굴에 행복이 스친다. 고맙다. 다른애들을 위해 준비했던 초콜렛은 다 냉장고에 넣어둔다. 여기서 친구를 챙기는건 내 입장에선 사치다. 마지막으로 연수를 위해 사두었던 향수와 스위스산 에델바이스 연주기계를 꺼낸다. 그리고선 태엽을 돌린다. 에델바이스가 나온다. 아름답다. 가장 슬픈 순간에도 나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스스로가 이율 배반적이다.
연수에겐 그 다음날 이 선물을 주었다. 많은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황폐화 된 가슴은 무슨 말이든 다 미숙하게 뽑아 낸다. 내겐 미안한 마음이 언제나 앞섰던 아이였지만 이젠 그애가 나한테 미안해 한다. 연수를 보기전 수술 뒤 깨어난 아빠를 보았다.
응급실에서 였다. 자기 몸에 암세포가 득실 거리는 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마냥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유럽이 어땟는지 나에게 묻는다. 이런 저런 일로 맘이 상해있었던 자식이 안쓰러웠던지 계속 웃어 보인다. 아픈데 안아프려고 하시는 모습이 가슴에 멍을 준다. 누나랑 엄마는 억지로 울음을 감춘다. 아빠는 간호사 얘기를 하신다. 내가 고등학생인줄 알았다는 간호살 말을 전하며 몇 달 간의 맘고생으로 몇 년은 더 늙어버린 아들의 얼굴과 가슴을 북돋우러 하신다. 그런 마음 씀씀이가 너무 아팠다. 그 아픈 순간에도 미소를 지으며 나를 챙기는 그 처절한 부정이 너무 아프다. 지금도 아프다.
유럽에서의 추억을 말하려다 다른 얘기가 되버렸다. 지금까지 졸렬한 나를 잘 보살펴준 경흠이네가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 아버지도 아버지라는 경흠이 아버지 말이 빈말이 아닌걸 알기에 아직도 힘이 된다. 무릇 범용한 가슴에 수직의 파문을 일으켜 가슴이 다 타들어갈 적에도 내게 기갈을 해결할 수 있는 온정을 베풀어준 이들에게 다시금 감사한다.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언제나 나를 사랑해줬던 연수한테도 감사한다. 모두가 그 애를 욕해도 그 마음을 알기에 내겐 아직도 소중하다. 과거를 반추하다 불현듯 튀어나오는 이 아픔의 둔중함은 아마 심장의 피가 다 땅위에 뿌려질 때 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