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참 고민이 많을 시기이다. 내 또래들은 이번 설날에 세뱃돈을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하였고 어떤 아해들은 자기 조카들에게 세뱃돈을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성찰적 고민을 하였다. 또 어떤 친구는 사회에서 좀 더 높은 값으로
팔려 나가기 위한 담금질을 위해 휴학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고 또 어떤 친구는
자기가 계속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길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잡다한 고민에서 해결된 이들도 있다. 초딩때 젤 친했던 나의 친구는 전공 공부에
대한 회의를 거듭하다 수능을 다시 보기로 한 후 고등학교 때 이후로 가장 편안한 경지에 이르렀다.
고시를 보네 좀 있다 컴터 관련 직종으로 옮길거네 하던 경찰대 나온 내 고딩 때 짝궁은 이제
달려가는 시간의 속도와 보조를 맞추기에도 버거운지 스스로의 위치에 자족하기로 한다고 그런다.
솔직히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에야 수많은 고민과 끝간데 없는 헤아림과 무량대수와 같이
느껴지는 경우의 수를 살피느라 심신이 다 피곤에 절어 있지만 일단 루비콘 강을 건너고 나면야
오히려 모든 행동들은 명쾌해 지고 정신은 오롯이 자기가 가야할 길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나도 지금 잡다한 고민에 빠져있다. 강박증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잡생각들을 생각지 않으려는
고민과 언제 다시 상경하느냐에 대한 여러가지 변수들에 대한 헤아림이 만든 고민이 있다.
불과 몇달 전에 결정한 언론사 쪽의 길이 나에게 맞는가에 대한 고민과 아버지가 부재한 이후로
맘이 조금은 여려지신 엄마에 대한 고민과 지금 사놓은 이 수많은 클래식 음반들을 언제
다 집중해서 듣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다. 나보다 어리거나 혹은 그 또래의 사람이 깊은 학식이나
뛰어난 통찰력을 보였을 때 잠시나마 그이를 질투하는 이 소인배적 마음을 어떻게 누그리냐는
고민이 있고 몇몇 사람들과의 만남에 특별히 가중치를 두지 않고 어떻게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할까 하는 박애 정신과 같은 좀 같잖은 고민도 있다. 피동피동 살이 오르는 얼굴과 어느새부턴가
또래들보다 나이를 먹어 보인다는 지인들의 말에 반응한 외양에 대한 고민도 있고 하루하루가
알차게 여물어 지지 않는 것에 대한 존재 성찰론적 고민도 있다.
이러한 고민들도 과연 루비콘 강을 건널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불현듯 술라 펠릭스에 관한
시오노 나나미의 말이 떠오른다. 술라는 좋은 일을 하든 나쁜 일을 하든 항상 명쾌했기 때문에
인간적 매력이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따른다는 식의 말..
잡다한 고민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결정을 명쾌하지 못하게 하기에 사람을 우유부단
하게 하고 광장 공포증이 있는 사람마냥 밀실에서 모든 걸 해결하게끔 만든다. 물론 이러한
점이 나의 매력이 될 수 있지만 이제 이것의 유통기한은 조금 지난 것 같다. 유통기한이 지난걸
계속해서 먹으면 처음에야 그 익숙한 맛 덕분에 버리지 않길 잘했단 생각이 들지도 모르나
시일이 조금씩 흐르면 몸에 탈이 생기고 다른 음식조차 입에 담기 힘들어 진다. 이러한 고민의
끝은 아마도 늙은 노새와 작별을 구하고 새롭고 힘센 당나귀 등에 올라타는 일일 것이다.
인생이 종마 경주라면 아마도 지금이 타이어를 갈 때가 아닐까 한다.
----- 결론이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