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끗희끗 보이던 시간도 날짜도 없던 밤에

누구도 모를 분칠을 당신 앞에 해두고

옆집의 바둑이도 조금은 잠잠할 적에

반짓고리 옥가락지 쳐다보며 잠시 시름에 잠깁니다.

 

왜그런지 몰라 미운 그대가 달빛처럼 좁은 방 가득 채울적에

지그시 깨문 입술 사이로 파르르 눈물이 흐릅니다.

 

겉저고리 사이에 드러난 가슴팍에 서린 온기가

어쩌면 임의 손길이 달빛을 빌어

내 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진 것을 아닐지 하는 망녕된 생각에

홀로 얼굴 붉어지고 가슴이 널뛰듯 하지만 

임을 원망함에

다시금 나를 질책하고 당신을 미워합니다.

 

기나긴 상념을 닭 우는 소리가 깨돋울 때에야

지난한 하룻밤이 햇님에게 자리를 내줄 때가 됐음을 압니다.

 

비단을 팔러 온 상인의 늙은 노새만이 이 시름을 아는지

저벅저벅 걸음으로 햇님 깔리는 땅바닥을

되새김질 하는냥 못내 못살게 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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