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잠을 너무 많이 잤다. 머리가 지근 거릴 정도로 낮잠을 많이 자다 보니 불면증이 찾아오는건 당연한 현상이다. 오늘의 선택 음반은 비틀즈 앤쏠로지 2집이다. 첫번째 씨디에는 예스터데이가 라이브버젼과 불완젼 레코딩 버젼의 두가지로 실려 있는데 레드 앨범에서 보다 자유 분방한 딱정벌레들을 느낄 수 있다. 요즘 말러니 브루크너니 별로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음악을 듣다 보니까 일상이 몽롱해 진 것 같다. 그래서 비틀즈를 듣고 있는데.. 좋다. 아무래도 간만에 방청소를 해서 기분이 더 좋은지 모르겠다.

한자 공부를 계속 하면서 느낀건데 역시 언어는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의 반영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한자어를 자세히 보면 남존여비의 사상이 군데군데 보이고 각 글자에서 조그마한 부수 하나 차이로 뜻이 꽤나 많이 바뀌는 묘한 재미가 있기도 하다. 상상 플러스 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순 우리말을 쓰자는 취지하에 게스트들이 쓰는 한자말을 한글로 고쳐주는 걸 몇번 보았는데.. 그냥 한자로 쓰는게 훨씬 정감있고 바른 표현으로 느껴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우리말이 주류가 되게 하는 것에는 찬성을 하지만 언중의 언어와 괴리된 몇몇 표현들은 상당히 귀에 거슬린다. 게다가 한글을 쓰자는 프로그램의 제목이 한자어와 영어의 조합어인 상상 플러스인데다가 오늘의 게스트~! 라면서 손님들 소개하는거 보면 지나친 영미국가에 대한 사대주의가 은연 중에 드러나는 것 같다. 한자는 어차피 한글 표기로 바뀌고 있고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자란 세대가 많기 때문에 한자가 예전에 누렸던 지위가 점점 위축되 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반비례하여 영어 같은 경우는 모두가 기본 교양으로 치부하며 당연히 알아야 하는 듯한 사회적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영합한 듯한 이 프로그램은 뭔가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한다.

  또한 우리말에 남은 일본어 잔재를 제거 하는 작업에도 나는 약간 거부감이 드는 것이 일제시대를 살아온 할아버지 세대나 그 위의 세대들은 말 중간중간에 한국어말 처럼 되어버린 일본어를 많이 쓰신다. 그 세대의 바로 직계라 할 수 있는 우리 부모님 세대 또한 어느정도 그 분들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가끔씩 일본어의 잔재라 할 수 있는 말을 쓰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일본어 잔재를 청산하자는 이 운동은 본의아니게 일제시대를 꿋꿋이 이겨내고 우리세대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 윗새대에 대한 미필적 고의로서의 하대하는 시각을 아랫세대에게 줄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문물에 적응 하는 것이 당연히 늦을 수 밖에 없는 윗분들에게 그분들의 언어적 사대주의를 지적하며 언어를 순화시켜 준다는 것 자체가 살아온 시간만으로도 보이지 않은 많은 지혜를 쌓으신 그분들에게 결례를 범하는 것이라 본다. 또한 그분들에겐 익숙한 말이 식자라 불리우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일본어의 잔재로 취급받아 그분들의 언어 생활에 강한 자기 검열을 가하게 하는 것은 문화적 진보라는 기치아래 행해지는 구세대에 관한 핍박으로도 비친다. 물론 오버 하는거 인정한다. 오버하든 말든 할말은 하겠다. 내 블로그니까!

 비단 일본어 뿐만 아니라 표준어 사용에 있어서도 나는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자장면을 짜장면이라 쓰는게 이상하다는 듯한 몇몇 식자들의 반응.. 나는 그들 중 울학교를 다녔던 정재환 아저씨가 표준어 쓰기 운동에 열렬히 동참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주류 이데올로기에 편입한 순수한 우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 의식이 아닌 일종의 순교자처럼 표준어를 사랑하는 그 분을 보면,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언급하였던 가장 위험한 보수주의자의 한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학교 홈피에서 그 아저씨 얘기가 나오면 찬양하는 글 일색이기에 온라인 상으로나마 그분의 국어 사랑이 가지는 맹점을 지적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그 표준어라는 것의 정의는 현대 서울사람들 중 교양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이것도 일본의 표준어 사정을 따온 것이라 한다. 얼마나 계급적인 말이며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주류적 입장을 대표하는 정의인가. 하지만 표준어를 확립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필요한 일이기에 필요악이란 생각으로 넘어가지만 가끔 국어학자나 기득권층이 보이는 비표준어에 대한 유연하지 못한 자세가 나는 상당히 마음에 안든다. 모두가 쓰는 짜장면을 자장면이 맞다고 몇몇 식자들이 정하였다 하여 자장면을 강요하는 사회는 비상식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아직 수정해야 할 것이 많다는 민주주의 체제라 하지만 이것은 민주주의의 대승적 정의와도 맞지 않는 지적 기득권자들의 언중에 대한 폭력이다.그리고 표준어로 인하여 생기는 지방문화의 위축과 서울로의 편입 가속화 들도 고려해 봐야 할 문제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투가 촌스럽다거나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우선 소위 말하는 서울말을 쓰는 다수에게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거기서 능동적이고 빠른 진화를 이뤄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재빨리 주류의 언어를 자기화 하여 자신이 적을 두었던 지방의 색깔은 일제의 잔재를 대하는 국어학자의 반응 마냥 구석에 쳐박아 둔다. 그런데 남자들보단 여자들이 이러한 빠른 변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 문화적 환경에 있어서의 적응력은 여자가 강한 것 같다는 나름의 유추가 나오긴 한다. 여튼 이러한 빠른 적응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영원히 비주류의 모습으로 서울이라는 대한민국의 수도에 남을 것이고 결국 이들은 사투리도 표준어도 아닌 어색한 말들을 창조한다. 변증법적인 진보를 위한 창조가 아닌 주류문화에 편입하지 못한 패배자들의 가학적 노력이 이루어낸 창조물이기에 이 새로운 서울말은 서글프기 까지도 하다.(근데 말투 들으면 웃긴다.^^) 주류는 문화적 다양성이 21세기의 중요한 화두라 외치는 반면에 다양성과 대척점에 있는 언어인 표준말을 강요하는 사회의 모습은 사뭇 이율배반적이다. 주류는 결국 언어에 있어서는 문화적 다양성 보다 통일성을 더욱 열렬히 원한다는 인상을 준다. 회화나 음악과 함께 인류의 위대한 지성이 담겨 있는 문학이라는 장르에 이러한 문화적 통일성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즈려밟고'와 같은 시어나 태백산맥, 토지와 같은 20세기 문학적 업적들은 표준어 강요가 지닌 한계를 보여준다고 본다. 물론 이것도 좀 오바다.

수도권인구가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작금의 시점에서 이러한 표준어가 가진 묘한 권력적 성향에 대한 논쟁은 기실 남녀 문제처럼 지극히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는 태고적 한계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표준어를 강요하는 사회가 싫다. 서울이 아니면 시골이라는 몇몇 와정지와의 견해를 가진 자들의 이분법적 사고 또한 지양해야 한다. 언어는 분명히 권력이다. 하지만 노력에 의해 극복 될 수 없는 출생지의 한계에 의해 생기는 이런 계급적 구조는 반드시 타파해야 한다고 본다. 해결책이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에 대한 변화만이 최선책이라 할 수 있지만..솔직히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겠다. 다만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일상에 숨겨진 제도권의 암묵적 계층형성에 대항할 수 있는 민중이 길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 말길다.. 가끔은 내가 너무 예민한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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