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때 껍데기를 추종했다. 그냥 이래저래 그럭저럭한 껍데기가 아닌 누구나 한 번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획 돌려 쳐다보게 만들만큼 멋들어진 껍데기를 간절히 앙망했다. 내면의 미가 가장 참되고 어쩌고 하는 소리는 다 개수작 헛소리라고, 떠들고 다니지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다 가식적이라 여겼다.
누구나 그렇듯 인간에게는 단점과 장점이 공존한다. 평범한 인간인 나도 그냥 보이는 무수한 단점들과 함께 분명한 장점을 몇 개쯤은 보유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련만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첫 대면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시각적 효과로만 나라는 인간을 판단한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내 모습 안에 아몬드가 들었는지 땅콩이 들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아 하며 그저 내게 등을 보인다. 무수한 그런 순간들이 닥칠 때마다 매번 무슨 용가리 통뼈처럼 우하하하 웃으면서 그래 잘 가라 사라져라 안녕안녕, 그럴 수가 있었을까, 아니 그렇게 했다면 스스로의 정신건강에 매우 이로운 결과가 기어코 도래했을 것인가.
혼자서 죽어넘어지는 그 순간을 향해, 내내 혼자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등짝 프레임은 내 심장에 와 꽂히는 칼날이 된다.
나는 훌륭한 껍데기가 갖고 싶었다. 동성들의 시기를 한 몸에 받으며 이성들이 개떼처럼 덤벼드는, 그런 것이라면 좋았다. 실로 나는 내 주변에 가끔 외계공주인양 등장하는 아름다운 동성들의 자태에 경도되었다. 그 향기롭고 말간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사한 빛 조각들은 늘상 순식간에 나를 매혹시켰고 내 마음을 훔쳐 갔다. 그러는 동시에 열등감의 덩어리들이 내 온 몸에 두엄처럼 뿌려졌다. 어쩌면 내가 화사한 껍데기를 원했던 것은 같잖게도 오로지 일종의 보복을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무수히 내 눈에 와 박혔던 그 차가운 등짝들을 다시 돌려세운 뒤 나의 허망한 껍데기로 그 가련한 눈들을 홀려 버리고 싶은 마음, 미미하게나마 존재하는 내 장점의 ㅈ 하나도 그려질 순간을 제공하지 않았던 그 대단한 매정함에 꽂고 싶은 우스꽝스런 비수, 뭐 그런 어이 없는 상상.
내가 왜 갑자기 이런 글을 쓰는지, 겁나게 이유를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내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사실과 언제였는지 모르게 껍데기에 대한 욕망은 귀찮음으로 인해 희미해져 버렸다는 것이다.